6.25전쟁과 1952년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출판 비화 2
화물칸 트렁크에서 순간적으로 꺼내어 손가방에 넣어 생존한 원고.
--옥성득, <대한성서공회사 III, 1945-2002> (2020), 49-58.
1950년 2월 한글 개역판 성경전서 1차 원고가 완성되었다. 6월까지 구약 5경을 실험적으로 출판했다.
1950년 6월 28일 전쟁 발발 후 나흘 만에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 대한성서공회 건물에 있던 한글판 개역 성경전서의 1차 원고가 임영빈 총무의 기지로 시골 김치 항아리 안에 보관되면서 9월 28일 3개월 후 서울 수복 때 공회 건물은 전소했으나, 원고는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전 포스팅 참고)
임영빈 총무는 9월 말 이 김치 항아리를 파내어 원고를 들고 2차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공회 안에 있던 성경 50만 권도 공회 건물과 함께 불탔고, 수 톤에 달하는 인쇄지, 미제본 성서, 공회 문서들도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남은 것은 개역 성경 원고뿐이었다. 임 총무는 새철자법으로 개정된 성경을 출판하기 위해서, 10월 기독교서회 건물에 마련한 임시 사무실에서 원고를 수정해 나갔다.
그러나 서울 수복의 기쁨도 잠시, 1950년 말 중공군의 참전으로 서울 시민들은 성탄절이 되기 전에 서울을 떠나 다시 한 번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공회 직원들도 눈 내리는 서울을 서둘러 떠나 부산에 내려갔다. 임 총무도 가족들을 배 편으로 먼저 부산으로 보낸 후, 공회 뒷 정리를 한 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만원이라 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기차 지붕에 엎드려서 가기도 했으나, 결국 얼어 죽는 자도 생겼다.
그런데 이 부산행 기차에서 다시 한 번 성경 원고가 안전하게 보관되는 기적이 있었다. 임 총무는 큰 트렁크 안에 원고를 넣었으나, 화물 칸에 넣기 직전에 원고만 꺼내어 자신의 손 가방 안에 넣었다. 부산에 도착하니 트렁크는 사라졌다.
원고를 들고 부산에 도착한 임 총무는 대청동 중앙교회 지하실 한 칸을 빌려 임시 사무실을 마련했다. 화재로 멸실된 400여 장의 원고를 다시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면 성경 수요가 급증할 것이므로 성경 출판이 시급했다. 임 총무는 1951년 2월 일본 도쿄에 가서 원고 2000페이지를 수정하면서 출판을 시도했다. 좁은 사무실에서 자면서 자취를 하고 무더위에 원고 작업을 강행하면서, 아래쪽 치아가 거의 빠져 새로 해서 넣어야 했다. 그는 민족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예레미야 애가를 읽으면서, 자신을 고통을 견뎠다.
일본인 인쇄공이 한글을 몰라 한글 활자 주조가 어려워 1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자, 임 총무는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에서 인쇄를 추진했다. 김태룡 간사가 실무를 맡고, 오인영 새문안교회 장로, 강석모 연합신문 교정부장이 교정을 맡았다. 삼복더위에 엉덩이가 짓무르고 머리털이 상당히 빠진 임 총무는 초고에서 최종 9교 조판 원고까지 재독했다. 활자가 모자라 곳곳에 반복되는 글자는 비어 있었다. 최종 교열은 안신영 선생이 맡았다. 66권 책명과 표지 성경전서 글씨는 최수섭 씨가 썼다.
드디어 1952년 9월 25일 피난지 부산에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국판, 1,614쪽)이 인쇄되어, 10월에 출간되었다. 초판 3,000부였다.
1939년에 나온 개역은 아래 아가 들어간 구철자법으로 되었으나, 1952년에 나온 개역은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른 새철자법으로 하고, 일부 오역까지 수정한 새로운 판본이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텬디를 창조하시니라 (1939 개역)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952 개역)
조촐한 출판 기념식은 10월에 부산 중앙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이듬 해에는 4.6배판 축쇄판도 오프셋 인쇄로 10,000부가 출판되었다.
이 개역은 1956년에 다시 한 번 개정되고, 1961년판에서 대폭 수정되었다.
우리 손에 한글 성경이 들어오기까지, 한국 전쟁 통에 수고한 여러 공회 직원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1950년 9월 서울 종로 화재로 불타기 전 김치 항아리에 보관된 원고, 그리고 1950년 12월 부산 피난 때 순간적으로 트렁크에서 꺼내어 손 가방에 보관된 원고를 생각하면, 한글 성경에 역사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할렐루야!
전쟁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기적으로 보존, 수정, 출간되었다. 폐허 속에서도 장미꽃은 피고, 성경을 읽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소망을 품고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말씀이 있는 민족과 교회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