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첫 성탄절 예배, 1887년
1887년 9월 27일 목요일 저녁 정동장로교회(새문안교회)가 조직되고, 10월 9일 일요일 벧엘감리교회(정동제일교회) 첫 예배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1887년 12월 25일에 두 교회는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한국 개신교회의 첫 성탄절 모습을 아펜젤러 일기를 통해서 보자.
내가 학부 3학년 때인 1984년, 중앙일보 사옥 마이크로필름실에서 출력한 후 아르바이트하던 원효로 한통개발회사 기사실에서 번역했다. 아펜젤러 내한 100주년 때인 1985년에 연세대출판부에서 발간한 <아펜젤러>, 314-316에 나온다. 당시 내가 공부한 흔적도 남아 있다.
최초의 산타클로스는 아펜젤러! 그는 양말 네 개를 걸어놓고 딸 엘리스, 피터 쿠퍼, 이서식, 최갑길 네 아이에게 동등하게 선물을 주었다. 아펜젤러 부부는 성탄 선물을 교환했다.
오전에는 유니언처치(담임목사 아펜젤러)에서 장감 선교사들과 외국인들(주로 외교관과 군인)이 모여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오후 2시에는 벧엘교회에서 한국인 감리교인만의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세례식(김명옥)만 하고 성찬식은 하지 않았는데, 감리교회 최초의 성찬식을 10월 23일 벧엘교회에서 거행했기 때문이었다. (참석자는 5명: 최성균, 장, 강재형, 한용경, 권서 최성균의 아내, 첫 세례인 박중상은 불참). 스크랜턴 의사가 동참하여 기도와 말씀 봉독을 했다. 설교는 아펜젤러, 감리교회 첫 한국어 설교였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결과 내한한 지 2년 반만에 한국어 설교 원고를 읽을 수 있었다! (스크랜턴도 첫 한국어 기도문을 읽었다! 의사였지만 알렌과 달리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배워서 곧 번역까지 할 수 있었다.) 첫 설교는 마태 1장 21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였다. 예배 순서에서 특이한 것은 예배 처음에 세례를 준 것과, 설교 후에 주기도문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어로 소통하는 날을 고대한 아펜젤러,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단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학생이 되어서 배워야 했다.
소박하지만 성탄의 정신이 살아있던 첫 성탄절 예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