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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문서, 성서, 번역

천도소원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개신교 베스트셀러 천도소원]을 보면서

천주교에 마테오 리치의 <天主實義>(1603)가 있었다면 개신교에는 윌리엄 마틴의 <天道溯源>(1854)이 있었다. 출판 후 1900년 전후까지 50년간 최대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을 읽고 이수정이 개종했고, 김옥균도 기독교에 관심을 가졌고, 뒷날 최병헌은 이 책을 상당부분 번역해서 <신학월보>에 실었는데 <聖山明鏡>(1909)에도 일부를 넣었다. 한 마디로 유학과 개신교의 관계 설정에서 천주실의-천도소원의 보유론이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를 논할 때 이 두 책을 읽지 않고서는 그 출발을 논할 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 페이지만 읽어보자.

줄친 부분만 번역해 본다. (내 책, <한국기독교형성사>, pp. 573-575에도 있음.)

어떤 사람은 “만일 내가 이 도[예수교]를 따르면 유교에 대해서는 반드시 등을 돌려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이는 다음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유교는 [인륜인] 오륜을 말하나 예수의 도는 오륜 위에 신인(하나님과 인간) 관계를 더한다, 신인 관계가 조화롭게 되면 오륜의 인간관계도 자연스럽게 각각 제자리[바른 질서]를 얻게 된다. ... 유교와 예수교는 그 도의 광협(넓고 좁음)으로 차이가 나지 정사(정통과 이단)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찌 배교라 하겠는가?

예수교 안에 유교가 들어 있으므로 참 예수교인이 되면 참 유교인이 된다는 보유론(補儒論 accommodation theory)과 성취론(成就論 fulfillment theory)이다.

이것이 최병헌의 주요 논지였다. 유교 도덕의 기초인 인간관계에 대한 오륜을 버리지 않으면서 신륜(神倫)인 하나님 관계가 우선순위에 있는데, 원시유교(原始儒敎)에 있던 이 상제 숭배를 주자의 신유교(新儒敎)에서 상실했으므로(리치의 신학과 동일), 예수교로 신인 관계를 회복하면 오륜도 제자리를 잡게 되어 중국이 근대 국가로 가는 첫 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마틴은 유교와 예수교의 관계를 흩어져 있는 보석(오륜)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금줄(golden string, 예수교)로 엮어 좋은 목걸이를 만들어 중국인에게 선사하는 것으로 그렸다. 만주 존 로스는 그 관계를 함께 밭을 가는 두 마리(한 겨리)의 소에 비유했다. 예수교는 유교를 포함하고, 유교의 보석을 묶어 목걸이를 만들고, 함께 동아시아의 영성을 밭갈이하여 파종을 준비한다.복음의 씨앗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있는 곳에서 잘 자라지 못한다.

밭은 변하고, 신학도 변한다. 오늘 젊은이의 마음밭(心田)에서 예수교가 발견하는 보석은 무엇일까? 그것을 一以貫之하는 신학은 무엇일까? 한국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영적 想像力의 貧困이 문제이지, 젊은이들의 메마른 땅이 문제가 아니다. 150년 전, 100년 전에는 돌밭이요 잡초 무성한 황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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