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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언더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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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길다] 1일 유길준의 발간(1895) 2일 동아일보 창간(1920) 3일 조선기독교대표자 나라신궁 참배, 동대사 앞 촬영(1943) 제주 4.3 사건 발발(1948) 5일 최제우 동학 창도(1860) 언더우드, 아펜젤러 부부 인천항 도착. 언더우드만 서울 입성(1885) 5일 남궁억 별세(1939) 6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1882) 7일 창간(1896). 영문판은 헐버트 편집 8일 하멜 일행 제주도 파선(1653) 정약종 순교(1801) 10일 상해 임시정부 조직(1919) 서울의 기퍼드 목사 별세(1900), 충격으로 부인도 5월 5일 별세 숭실대 모우리 교수 평양지방법원 1심 재판, 6개월 선고(1919) 11일 마산 앞바다 김주열 시체 떠올라 4.19 기폭제가 됨(1960) 12일 스코필드 의사 별세(..
그런 상황에 "만일" 당신이 그럴 수 있다면 .... (언더우드) 1921년 언더우드 부인이 쓴 남편의 전기 Underwood of Korea 마지막에 나오는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 "IF" 부인은 이 내용이 말년의 언더우드 목사를 가장 잘 묘사하기에 인용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 시를 영문과 4학년 때인 1986년에 수정하여 완성했다. 지금 보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어서 새로 번역하고 싶지만 이미 아래 책 마지막 부분에 인쇄되어 있으니 그대로 인용한다. 그가 여정을 마치고 본향으로 간 지 110년이 가까이 온다. 그를 바라보면서 40년 간 연구하며 살았으나, 그에 따라가지 못하니 못내 부끄럽다.
언더우드와 YMCA 전택부, "언더우드 박사," (1978년 4월): 10. 언더우드 박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만큼 그는 너무나 유명한 선교사이다. 그는 첫째로 한국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의 창설자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YMCA 창설의 최초의 발의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887년 새문안교회를 창설하고 보니 그는 전도자로서의 대업을 성취한 느낌이었다. 허나 한구석 허전한 것은 아직도 이 나라 문화계에는 파고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모여드는 교인들이란 전부가 무식대중이었고 지식인은 하나도 없었다. 무식한 교인들이 먼저 교회당을 점령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비록 유식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싶어도 교회에 나올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관념으로써는 무식대중과 유식한 사람들은 같이 앉을 수가 없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