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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례, 예배, 설교

transactional or transcendent?

transactional or transcendent?
글이나 설교나 강의는 머리로 주고 받는 일종의 거래이다. 이익을 주고 받는 정보 교환이다. 가슴으로 내려가지 않고 머리를 굴리는 수준에서 끝난다. 설교를 노트에 적어도 다음 날이면 다 잊는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 기억에 남는 설교는 별로 없다. 설교 수 십 년 들어도 변하지 않는 교인이 많은 이유는, 설교를 머리로만, 노트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설교자도 설교 일을 처리하는 사역꾼이다.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설교대로 교인들이 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고 설교한다. 그래서 변화가 없다. 교인들이 설교대로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 달 안에 한국이 뒤집어 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정보 교환, 지식 거래이기 때문이다. 성경 지식이, 신학적 현란함이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다.

설교자가 체험한 이야기는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가슴까지 내려가게 하여 변화를 이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환대를 받았거나 어린아이처럼 즉흥적으로 온 영혼이 즐겁게 뛰노는 경험을 했다고 하자. 그런 경험을 이야기 하면 직접적이고 순간적이고 거룩한 초월적인 체험이 어느 정도 전달되고, 청자도 하나씩 그런 경험을 자신도 해 보면서 변한다.

교인들이 기쁨에 대해서 배우지 않고, 실제로 기쁜 경험을 하고 (감사를 표현하고, 친구를 만나고, 즐겁게 같이 놀고 등), 친절에 대해서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로 내 귀한 것을 희생하면서 이웃에게 친절을 베푸는 실천을 해 나간다.

삶에 목적을 가지고 이런 기쁨, 친절, 온유, 인내, ...절제 등을 잘하는 기술을 체득해 나가면 passion(열정)이 생긴다. 열정을 가진 자는 가야 할 길(destiny)이 분명하므로 흔들리지 않고, 그 진리와 자유의 길에서 초월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이 내 성품을 변화시킨다. 초월이 내면화된다.

비정한 목사와 교인; 화내는 목사와 교인; 삿대질하는 목사와 교인; .... ; 욕망 덩어리 목사와 교인. ... 말짱 뻥이다. 
갈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