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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erly Review (July 1817)

[나의 애장서] Quarterly Review (July 1817)


이 200년 전 잡지에는 다음 두 책을 선별해서 싣고 요약 정리하는 긴 글(pp. 463-506)이 담겨 있다.

Henry Ellis, "Journal of the Proceedings of the late Embassy to China" (London, 1817), 526 pages; 

John McLeod, "Narrative of a Voyage in His Majesty's late Ship Alceste to the Yellow Sea, along the Coast of Corea..." (London, 1817), 284 pages.

동인도회사 문제로 황제를 알현하려던 중국대사 앰허스트 경(Lord Amherst)은 황제에게 고두(叩頭)하기 싫어 결국 만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중국을 두루 여행했다. 이어 H. M. Brig Lyra호의 바실 홀(Basil Hall) 선장과 H.M.S. Alceste호의 맥스웰(Maxwell) 선장에게 지시하여, 한국과 근해를 탐문하도록 했다.

두 선장은 1816년 9월 1일부터 며칠 간 한국 황해와 서해안 섬들을 탐문하고 이어서 오끼나와를 방문한 후 위의 긴 여행기를 남겼다. 앨세스터 호는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좌초되었다.

잡지 상태가 양호하다. 엘리스의 책이나 맥레오드 의사의 책은 수백-수천 달러가 넘는 고가라 구입하기 어렵다. 다행히 잡지를 옥션에서 저가에 구입했다.

1816년 이후 섬에 내린 서양인을 보고 섬 주민들은 호의를 베풀었으나, 유지나 지방관들은 한결같이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떠나기를 간청했다.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 때문이었다.

1816년부터 한국 서해안에 서양 상선인 흑선(이양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50년 후, 1866년 제너럴셔먼 호는 힘으로 평양까지 올라왔다가 토마스 목사와 함께 불타고 말았다. 1866년 프랑스는 병인양요를 일으켰고, 가톨릭교회는 박해를 견디다가 함포 선교를 지지했다. 힘에 의한 선교가 실패했다. 1816년에서 60년 후, 한국은 일본 흑선에 개항을 당한다. 기독교 선교가 실패한 자리에 일본의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역사의 첫 페이지에 해당하는 1816년 여행기. 한국 근대사가 열리고 있다.



1810년대 당시의 전형적인 책 제본 모습

이것이 맥레오드 책에 나오는 삽화로 맥스웰. 홀, 맥레오드, 엘리스 등 영국인들이 만난 한국인 관리와 그 수행원들이다. 이 책 원본은 나에게 없다.

ⓒ옥성득, 2017.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