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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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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게일의 변화, 이상재의 기개 사람은 변한다. 또한 변하지 않는다. 연동교회의 게일(James S. Gale) 목사를 대표적인 친일 선교사로 보는 것이 통설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이상재 YMCA 총무가 삼일운동 이후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인 1921년, 친구 게일은 이상재를 진정한 애국자로 칭송하면서 쓴 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상재 선생은 일본의 통치에 대해서 No!를 분명히 하고, 웃으면서 게일과 작별하고 당당히 감옥으로 갔다. "수많은 용감한 지사들이 [감옥에서] 고통을 겪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는데, 나와 같은 늙은 개가 어찌 [길에서] 놀면서 돌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감옥에 갈 때 이상재의 나이가 70세였다! 이상재는 1905년 55세에 회심하고 사람이 변했다. 이후 나라와 교회와 청년을 위해 헌신했다. Gal..
1918 북가주 Stockton 한인감리교회 1903년에 시작된 San Francisco 한인교회 이후 주변으로 흩어진 한인들이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1918년 스탁톤한인감리교회이다. 1920년대에는 북가주, 남가주, 중가주에 걸쳐 많은 한인 교회가 존재했다. 그 역사가 어느 정도 정리는 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 조사는 필요하고 중요한 과업이다. , 여력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이다. 누가 할 사람이 없을까? 세 사람 정도 2년 간 지방 도시 도서관들을 뒤지고, 공저로 쓰면 된다.
1934 감리교회 희년, 연대표 감리교회는 1934년 6월 매클레이 서울 방한을 기점으로 50주년을 기념했다. 아펜젤러나 스크랜턴으로 하면 장로교회에 뒤지기 때문에, 알렌이 온 1884년 9월보다 3개월 전인 6월에 방문한 매클레이를 기점으로 했다. 양주삼 감독이 무리하게 연도를 앞당겨 1934년 6월에 희년을 기념했다. 방문 선교사를 기점으로 하는 나라는 없다. (참고, 옥성득, (새물결플러스, 2016), 제4장 , pp. 58-91.) 장로교회에 대한 열등감으로 희년을 1년 앞당겼다. 1934년에는 거의 양주삼 감독 독주 체제였다. 그러다가 바로 신사참배 수용하고, 이후 몰락의 길로 갔다.
민영환의 자결, 1905 옥성득, (홍성사, 2009), 72-73. 1905년 대한제국이 외교자결권을 상실한 을사조약이 맺어지자민영환(閔泳煥, 1861~1905년 11월 30일)은 자결했다. 언더우드 부인(Mrs. Lillias H. Underwood)은 사익을 바라지 않고 오직 나라와 공의를 위해 살다가 자결한 의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애국 자결에 죄라는 말은 당시에 도무지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기회주의적이고 돈을 사랑하고 양심이 없는 관리층 가운데, 그는 놀라울 정도로 正道를 고수했다. 백성에게 봉사하고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목적이었고,그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라나 교회를 위한 순국이나 순교는 모두 큰..
헬렌 켈러, 조선에 오다, 1937년 나는 여자입니다. 나는 어릴 때 병에 걸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에 좌절치 않았습니다. 세상의 차별과 구조악을 보고 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귀머거리, 소경, 좌파, 여자, 기독교인. 이 다섯 가지 소수자 조건에도 불구하고 1937년 7월 제가 조선을 방문했을 때 여러분은 나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 때 쓴 내 편지를 읽어봅니다. “조선인 여러분, 나의 유일한 소원은 세계 평화와 인류애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앞뒤에 계시니, 아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만사는 뜻한 바대로 이루어집니다. 바라건대 여러분은 조선의 맹아들을 도와서 그들의 불행으로 하여금 성공을 향한 층계가 되게 하여 사회의 유용한 부분으로서 제자리를 차지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눈에 광명을 주..
이광수, “금일 조선 예수교회의 결점,” <청춘> 11호 이광수, “금일 조선 예수교회의 결점,” 11호 (1917년 9월): 76-83. 1. 계급적, 2. 교회지상주의적, 3. 교역자의 무식, 4. 미신적
이광수, “예수교의 조선에 준 은혜” <청춘> 9호(1917. 7) 이광수, “예수교의 조선에 준 은혜” 9호(1917년 7월), 13-18. 1. 서양사정 알림, 2. 도덕 진흥, 3. 교육 보급, 4. 여자 지위 향상, 5. 조혼 폐지 6. 한글 보급, 7. 사상의 자극, 8. 개성의 발견
사진으로 보는 김구 선생, 1940-49 김구, 1949년 6월 26일 별세 1945. 11. 3 오후 비행기 편으로 김포 비행장에 착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