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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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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일제 싱가포르 공격 기념 대강연 영하(박)인덕, 천성(김)활란, 고령(신)흥우, 무슨 호나 되는 줄 알겠다. 왜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전쟁 지원 강연을 할까? 3년 반 후에 어떤 일이 올지 알 수 없는 인생이다. 대동아의 꿈은 산사조각 났으나, 이들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1950 경찰이 킨슬러 선교사에게 보낸 감사문 1950년 11월 20일 내무부 치안국 보급과 경위 김영덕이 Francis Kinsler 목사에게 감사 편지 전쟁 중 부상 경찰관과 전쟁 피해를 입은 가족에게 구제 물자로 도와준 데 대한 감사장 감사문, 권세열[Francis Kinsler] 목사 귀하 기독세계구제회 한국지부 귀하께서는 금번 전란으로 인한 국가 존망지추에 있어 부상 경찰관 및 동 전재[전쟁 피해] 가족 구제용으로 다량의 구제 물자를 제공하여 주심에 따라 경찰관 사기 진작과 동 가족 구제에 도움이 된 바 불감할뿐 부당라 [불감이요 부당이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다] 본직의 직무 수행상 협조한 바 다대하옵기 심심의[깊은] 사의를 표하는 동시에 치안국장으로부터 보내는 감사장을 전달하오니 희수(기쁘게 받음)하시고 금후 가일층 지도편달과 애..
1883년 4월 29일 이수정 세례 사진 이수정 세례 기념 사진, 1883년 [한국기독교사 연구에서 미국의 기독교 주간지도 조사해야 한다] 사진은 이미 공개된 것이지만 1902년 1월 Christian Herald에 나오는 1883년 4월 29일 이수정 세례 기념 사진. 야스카와 목사가 문답을 했고 녹스 목사가 집례했다. 최근에 원본을 구입했다. 사진에서 미국인 선교사 2명, 중국인 어학교사, 한국인 번역자(이수정), 일본인 부부가 있는 것이 상징적이다. 네 나라 기독교인들의 공동 프로젝트로 초기 한국 기독교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본을 구입한 기념으로 찍었다. ⓒ옥성득 2016. 1. 8
1896년 독립신문 영문판의 기독교 기사 1896년 독립신문 영문판의 교회 기사독립신문 영문판과 한글판은 내용이 많이 다르다. 1896년 영문판은 헐버트가 편집했다. 따라서 헐버트의 신학이나 그의 선교관 등을 엿볼 수 있다. 4월 14일 여주 천주교도 신목 절단 시도여주에서 천주교 신부가 교인들에게 마을에 있는 오래 된 신목(sacred tree)을 베어 버리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났다. 이 고목은 정부 소유의 땅에 있어 정부의 소유였으나, 천주교인들은 막무가내였다. 주민들은 신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해 서울에 와서 에 호소했다. 헐버트나 서재필의 입장은 신목 신앙과 같은 미신이나 우상숭배를 없애는 것이었으므로 종교적으로는 신목을 베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법적으로는 타인의 재산을 불법으로 침해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
토왜란 "악질 한국인 친일파 관리" 土倭란 악질 한국인 친일파 관리1908-48년 용례에서 보듯이 토왜의 토는 토착인 곧 한국인을 뜻하고, 왜는 친일파의 뜻이었다. 악질적인 골수 친일파 관리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해방 이후에도 제한적으로만 사용했다. 많은 용례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만 세 가지로 그 뜻을 살펴보자1. 1908년 황현의 1908년 의병들이 고종의 복위와 통감부 철수, 일본인 관리 폐지, 외교권 복권을 주장할 때, 일본어를 하는 한국인 통역관이 무고, 살인, 약탈 등을 일본인(外寇)보다 더 심하게 하므로, 그들을 土倭(토착인 왜구 = 한국인 친일파)라고 했다. 곧 외국인인 왜구보다 토착인 왜구가 더 악질이라는 뜻이다.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6권 > 隆熙 2년 戊申(1908년) ② > 21. 義兵의 投書義兵投書統監府, 要以四..
1948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민주적 합법적 정부 국사 교과서 왜곡 논란, 무엇이 사실인가[옥성득의 역사시론] 1948/50년 유엔총회 결의로 본 대한민국 정부http://www.acropolistimes.com/news/articlePrint.html?idxno=19162013년 11월 06일 (수) 16:31:40 아크로폴리스 UCLA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옥성득 동문(영문 79/국사 84)이 다음 글을 아크로에 기고해오셨습니다. * * * * *한반도의 유일한 민주적 합법 정부최근 명지대 강규형 교수의 글 "歪曲 국사 교과서 修正 거부해선 안 돼"가 10월 23일자에 나오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서울대 박태균 교수의 시론 "유엔의 48년 ‘유일 합법정부’ 승인: 38도선 이남인가, 한반도 전체인가"가 10월 30일자에 실렸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1947년 북한 괴뢰정권이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1947년에는 소련군이 북한에 김일성 괴뢰 정부를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다음은 2018년 통일부가 발간한 이다.매년 발간하는 책으로 누구나 다운로드 받아 읽을 수 있다. https://www.unikorea.go.kr/books/understand/understand/20-24쪽에 북한 정권 수립 역사를 서술해 놓고 있다. 북한은 1945년부터 소련의 지도 하에 북한 단독 정권 수립을 준비했다. 남한이 먼저 단독 정부를 구성한 게 아니다. 북한 괴뢰 정권이 먼저 세워졌다. 1947년에는 헌법까지 만들었다. 1948년 2월에는 김일성이 인민군을 창설하고 3월 조선공산당 대회로 실권을 잡아 정권 수립을 실제적으로 완성했다. 소련은 친탁 통치 기간에 이런 과정을 진행하면서,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를 세우자는 U..
1940년 3월 20일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 1940 신사참배 가결 후 노회 모습1938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국가 의례로 규정하고 참배 결의에 이어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총회 결의에 따라 1939년부터 총회, 노회, 교회는 회의나 국경일 등에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다음은 1940년 3월 연화동교회에서 열린 평양 노회 38회 개회 모습이다. 개회 선언 후 교회 마당에서 을 거행한 후 회의에 들어갔다. 애국식은 국기 게양, 국가 합창, 궁성 요배, 묵도 1분간, 국민서사 제창. 만세 삼창으로 진행되었다. "대일본 제국 만세"를 삼창했을 것이다. 이어서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훼절한 교회의 모습이다. 신사참배를 수용한 마당에 다른 애국 행위는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일제에 굴복한 교회는 향후 5년간 무슨 일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