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브라운(Mary Ellen Brown, 1871~1907) 간호원이 1903년 10월부터 1905년 10월까지 2년간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며 전도사역도 종사했다. 쉴즈가 1902년 11월 제중원을 떠나 선천에서 근무하다가 1904년 2월 러일전쟁으로 서울에 와서 제중원에서 브란운과 함께 근무하다가, 1904년 9월 세브란스병원이 완성되자, 두 사람은 함께 근무했으나 이듬해 7월 안식년으로 미국에 갔으므로, 1904년 9월 세브란스병원 개원 후 1906년 10월까지 2년간 세브란스병원의 첫 간호원은 브라운이었다. [엄격히 말하면, 1904년 9월부터 1905년 6월까지는 쉴즈와 브란운이 함께 근무, 1905년 7-10월은 브라운만 근무.]
브라운은 캔자스의 라신(La Cygne) 출신으로 오하이오 옥스퍼드대학에서 2년간 공부한 후, 1896년 9월 20일 시카고의 일리노이대학교 의과대학(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 간호원양성학교를 졸업했다. 에반스톤 응급병원의 수간호원으로 수년간 봉사한 후, 1901년 12월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정하고 시카고의 무디성경학원에 입학했다. 친구였던 핀리(Betha Finley, 윌리엄 헌트 목사의 부인이 됨, 1905년 11월 평양에서 사망)가 1898년 한국에 파송되었으므로 브라운도 한국에 지원했다. 1903년 2월 16일 한국에 임명되었을 때, 그녀는 인디애나 코너스빌에 살고 있었다.
브라운 양은 1903년 9월 1일 서울에 도착했다. 1904년 9월 세브란스병원이 완공, 개원하자 간호원으로 근무했다. 세브란스병원이 개원한 후, 병동에는 브라운 양과 여자 의학생 겸 간호보조원인 박자혜가 2년간 일했다. 다시 정리하면
1902. 11-1904.2 쉴즈 간호원은 건강 문제로 서울을 떠나 선천 제중원(미동병원) 근무
1903.9-1905. 10 브라운 양 서울의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 근무
1904.2-1905.6: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선천의 쉴즈는 서울로 피난했고, 이때 제중원에서 일했다. 세브란스병원 개원 후 간호원으로 일하다가, 1905년 7월 첫번째 안식년 휴가를 떠나, 펜실베이니아의 고향 루이스ㅂ그에서 지냈다. 1906년 9월에 서울로 돌아왔다.
브라운은 에드먼즈 간호원이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하는 일을 도왔으며, 1904년부터 강의도 맡았다. 한국에서 봉사한 2년 반 동안, 병원의 간호 사역 외에도 그녀는 에비슨 부인을 도와 남대문교회 여성 사역을 보조하며 부인과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복음 전파를 위해 순회 전도에 참여하고, 병든 선교사들을 간호했다. 1904년 9월과 1905년 9월에 열린 북장로회 연례회의에서 브라운 양은 서울과 주변 지역 여자 전도사역에 임명되었다. 이는 쉴즈 간호원과 필드 의사가 전도사역에 임명된 것처럼 북장로회는 1906년 초까지 서울의 여자 의료 사역을 북감리회에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5년 10월 26일 브라운 양은 당시 서양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인 스프루(sprue)에 걸렸기 때문에 미국에 돌아갔다. 병세가 악화되자 1906년 2월 선교사직을 사임했고, 투병 끝에 1907년 7월 1일 인디애나 부모의 집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월간지 Arborculture(수목 재배)에 한국에 관한 기사를 기고했는데, 그녀의 노력을 통해 미국의 나무 수천 그루가 한국에 심어졌고, 민둥산이 많은 한국에서 숲과 그늘이 지는 나무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Personals and Notes," Korea Mission Field (May 1910): 130.) 그의 부친은 이듬해에 한국에 꽃개오동(Catalpa Speciosa) 씨앗 몇 파운드를 보냈고, 한국 전역에 무료로 나누어 주어서 심었는데, 많은 한국인이 이를 돈을 주고 사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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