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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추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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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6월 11일 Henry G. Appenzeller 여객선 침몰로 순직 1912년 그리피스 William E. Griffis가 쓴 가 출판되었다. 아펜젤러 Henry G. Appenzeller (1858. 2. 6- 1902. 6. 11)는 임신한 아내와 함께 1885년 7월 29일 서울에 도착했다. 1900년 두 번째 안식년으로 미국에 갔을 때 친구들은 그의 몸무게가 거의 절반으로 줄고 야위인 것에 놀랐다. 그만큼 개척 선교사들은 문자적으로 몸을 바치는 삶을 살았다. The Death of Henry G. Appenzeller From: The Korea Review Volume 2, 1902, June issue The Wreck of the Kuma-gawa Maru. On the night of the eleventh of June there occurred on t..
블레어 목사 부부 Rev. & Mrs. Herbert Edgar Blair, 37년 한국 사역 블레어 (Herbert Edgar Blair 방혜법, 1878-1945) 목사는 방위량(William Newton Blair)의 동생으로, 1878년 9월 27일 Salina, Kansas에서 태어났다. Park College와 Princeton T. Seminary (1904)를 졸업하고 1904년 11월 20일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1905년 2월 11일 선천에 파송되어 사역했다. 1908년 강계 지부 개척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1914년 대구로 이전했으며, 대구 서교회를 담임했다. 1941년 11월 한국에서 추방된 후 필리핀으로 갔으나, 일본이 점령하자 수용소에 보내졌다. 블레어는 1945년 2월 20일 Los Banos Camp에서 영양실조로 죽었다. 미군이 필리핀을 해방시키기 직전이었다...
1939 마페트 Moffett 목사 별세 1939년 10월 24일 마포삼열 목사 캘리포니아 몬로비아에서 별세하다. 1890년에 한국에 온 이후 1936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한국에서 45년 이상을 살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에 가서도 우체국에서 가면 자기도 모르게 "이 편지 미국에 보내주시오"라고 한국말을 할 정도였다. 1.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추도문 2. 한국 장로교회 총회 추도식과 추도문 3. 1980년 마포삼열 전기 영화로 만들다
1916 언더우드 추도사 언더우드 추도사, 1916년 에비슨과 게일이 썼다. 언더우드는 뉴저지 애틀랜틱 시티(Atlantic City)의 한 병원에서 1916년 10월 12일 오후 3시에 소천했다. 내가 쓴 추도사는 여기에 있다: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260
1915 로스 추도사 1915년 8월 7일 존 로스가 에든버러에서 1910년 은퇴한 후 5년만에 별세했다. 대영성서공회 중국 만주 지역 담당자였던 Robert T. Turley 총무가 회고록을 썼다. 그 아래 그리피스의 글도 추가한다.
언더우드는 어떤 사람이었나: 넓은 날개와 불 동가리 첫 목회 선교사 언더우드: ‘넓은 날개’와 ‘불 동가리’의 삶 내한한 첫 개신교 목회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 7. 1. ~ 1916. 10. 1.) 목사는 1859년에 태어나, 25세에 한국에 파송되어, 1916년 10월 12일 미국에서 사망할 때까지 32년간 봉사한 후 57세에 소천했다. 개척 선교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40대에 백발이 되었으나, 늘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청년으로 살았다. 한국인은 행동주의자요 열정가인 언더우드를 두 가지 별명으로 불렀다. ‘넓은 날개’(wide wings)와 ‘불 동가리’(a bundle of fire). ‘넓은 날개’의 측면에서 보면 사실 그는 한 사람이 감당했다고 보기에는 엄청난 양의 다양하고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