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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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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종교간 대화, 1965년 "韓國 諸宗敎의共同課題: 6大 宗敎 代表가 모인 討論에서" , 1965년 10월 21일. 韓國化·現代化되어야|親睦·聯合硏究·社會參與다짐 韓國「크리스찬·아카데미」가 주최한 「韓國諸宗敎의 共同課題」에 대한 국내 6대 종교 대표의 「대화」가 18·19일 이틀에 걸쳐 龍堂山「호텔」에서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종교각계의 대표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共同의廣場」을 마련한 이 토론회는 李能嘉스님(佛敎)·黃溫順여사(圓佛敎)·柳承國교수(儒敎)·朴養雲신부(가톨릭敎)·白世明씨(天道敎)·金在俊목사(프로테스탄트) 등의 자기 종교를 대변한 發題강연에 이어 社會參與、信仰의 自由 등 7개 항에 걸친 대화를 나누었다。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시종 겸양의 덕을 보인 이들은 타종교와의 친목과 연합적인 연구와 사회참여를 위한 기회를..
Frank William Stringfellow, A Private and Public Faith, 1962 Front book cover, Frank Willliam Stringfellow, A Private and Public Faith (Grand Rapids: William E. Eerdermnas, 1962) "FOR THE CHRISTIAN FAITH, the happiest thing to happen in America for a long time is the recession in religion. For the churches in the United States, the healthiest fact at the present time is the decline of religion." Frank William Stringfellow, A Private and Public Faith (Gran..
60년대 분신자살(소신공양) 1. Thích Quảng Đức (釋廣德 틱꽝득, 1897년 ~ 1963년 6월 11일): 베트남의 승려로 월남(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에 항의해 소신공양으로 생을 마감했다. 남베트남 사회의 공분과 응오딘지엠 정권의 종식을 불러와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다른 불승들도 그를 따라 월남 정부의 불교 탄압을 항의하며 분신자살했는데, 억눌린 민중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월남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베트남전쟁이 발발했다. 1967년에는 여승도 분신에 참여했다. 불교에는 전통적으로 분신(소신)을 통해 부처에게 공양하는 소신공양이 있었다. 《묘법연화경》에서 약왕보살이 향유를 몸에 바르고 일월정명덕불(日月淨明德佛) 앞에서 보의(寶衣)를 걸친 뒤 신통력의 염원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몸을 불살랐던..
박두진의 시 "성탄절 受肉," 1964 [아이에서 어른으로: 사명의 자각] 다음 박두진의 시 "성탄절 受肉"(1964. 12. 26일 발표)에서 보듯이 성육신과 십자가는 뗄 수 없다. 첫 성탄 말구유 어린 아이의 첫 울음 울음 울음 속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절규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성탄 사건 이후 첫 예수의 사건은 유월절 예루살렘 성전 사건이다. 12세는 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나이. 성인으로 들어가는 그 나이에 예수는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내 아버지 집에 반드시 소속해야 한다는 그 필연적 사명, 나와 아버지는 결속되어 있다, 하나여야 한다라는 天命에 대한 자각은, 30세 때 세례 사건 (아버지의 내 사랑하는 아들 선언)보다 훨씬 앞선 12세 때 이루어졌다. 그 '내 아..
1961. 5. 16 직후 기독교 신문 사설 1960년 9월에 창간된 에 실린 1961년 5월 29일, 6월 5일자 두 사설이다. 이 신문은 교단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정신과 평신도를 위한 신문을 표방한 진보적인 신생 신문이었다. (1964년 7월에 으로 제호 개칭.) 교회 통일과 민족 통일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교회 혁신과 사회 혁신을 추구했다. "5.16 군사혁명"이 발생하자 전후로 3주일 이상 휴간한 후 5월 들어 처음으로 5월 29일자가 발행되었다. 신문은 당연히 혁명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1면을 채웠다. 오른쪽 서문에서 4.19 혁명은 실패했으나 5.16 군사혁명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혁명을 국가재건의 혁명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국가재건위원회의 발표문을 그대로 실었다. 중간에 당시 논의되던 기장과 예장의 합동 운동을 소개하고, 왼쪽..
1969 달에서 처음 읽은 성경 구절은 ? 요한복음 15:5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Whoever abides in me and I in him, he it is that bears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English Standard Version)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두 번째 구절은 시편 8:3-4 When I consider thy heavens, the work of thy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thou hast ordained; What is man, ..
1969 마삼락 박사 대담 한국인에게 바란다: 잃어버린 생활철학 회복하고 더높은 이상을 추구하라. 대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문화와 민족성 때문에 한국 생존. 문제는 기독교의 분열성. 인구의 8%인 기독교에 잠재 가능성 많음. 50년 후 한국 개신교인은 다시 50년 전 수준으로 가고 있다. 1969년 인구의 8%가 개신교인이었다. 이제 다시 한 자리인 9% 수준. 곧 실제 주일 출석교인은 480만 정도(장로교인 280만, 오순절 70만, 감리교인 60만 등)이다. 그 모든 책임은 현직 신학교수들과 300명 교인 이상 중형 이상 교회의 목회자와 장로들에게 있다.자기 교단, 자기 교회 잘 나간다고 폼잡지 말라. 한국교회 전체를 살릴 궁리를 해라. 50년 전 마삼락Samuel Hugh Moffett 박사의 이..
유홍렬 교수의 <천주교회사>, 1962년 [자유당 정권에 열 받은] 유홍렬 교수의 , 1962년 1962년 출판될 때 마지막 세 페이지 '교회의 승리'에서 호교론적으로 쓰다. 앞 부분은 조선 시대 순교를 호교론적으로 기술하면서 조선을 마구 비판했다. 정부가 교회를 핍박하면 망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추천사에서 노기남 주교도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인의 씨니라"라는 터툴리안의 말을 인용하며 순교 신앙을 강조했다. 서론의 일부: "천주교회(가톨릭 Caholic)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교하신 이래 고금 동서양을 물론하고 가는 곳마다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어왔던 것이나, 특히 우리 조선의 천주교회사에서 그 모범을 볼 수 있다.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다시피 참된 일에는 방해자도 많았던 것이다. 영원한 진리성은 최후의 월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