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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문서, 성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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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석(박)사 논문의 역사 [30년 전 석사논문] "초기 성경번역에 나타난 주요 논쟁 연구 1877-1939" (장신대 대학원, 1993년 2월) 내가 쓴 1993년 신학석사 졸업논문 안에는 신문 기사 세 개가 들어 있다. 1991년 말 온누리교회 전임전도사를 사임하고, 1992년 1년간 시골 거창에서 쓴 논문으로 1993년 전국신학대학협의회가 주는 논문상을 받았고 (3명 수상자 기독교윤리학의 김정준, 실천신학의 장성배, 역사신학 옥성득, 모두 나중에 교수가 되었다.) 내 논문이 신문 세 곳에 소개되었다.에는 세 논문 모두, 와 에는 내 논문만 소개되었다. 기독공보와 한겨레가 관심을 가진 것은 당시 출판된 의 신명과 문체 등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신문 모두 한국교회 보수화를 비판하는 내 논문을 잘 소개해 주었다..
성탄절 전도용 발췌 성서, 1954년 성탄절 전도용 발췌성서 표지, 대한성서공회 발행, 1954년 전후에 읽을 거리도 제대로 없을 때 성경은 많은 학생들에게 독서를 위한 거의 유일한 책이었다.
덕혜입문 올해(2022년) 번역본이 김현우, 서신혜, 이고은 공역으로 새로 출간되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내가 2006년 영문 논문으로 소개했고, 그것을 (2020), 575-579쪽에 수정하여 실었다. 초기 한국개신교(와 중국 개신교)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전도문서)의 하나가 그리스피 존(Griffith John 楊格非, 1831-1912)의 (한문 초판 1879년)이다. Gate of Virtue and Knowledge라는 책명에서 보듯이 기독교 교리와 자연과학을 통해 예수교에 입문하도록 했다. 존의 글을 문서 조사인 션즈싱(沈子星, 1825-1887)이 유려하고 쉬운 문리체(淺문리)로 바꾸어서 출판했기 때문에 문장의 풍(風), 혹은 풍미를 중시한 중국 지식인..
묘축 문답, 1895 Ferdinand Genähr 葉納淸, (香港: 1856, 1863), 9 leaves. H. G. Appenzeller 번역, (서울: 한미화활판소, 1895), 18 leaves. 廟祝은 묘지기, 사당지기의 뜻이다. 1. 본문 전문은 다음에 있다. http://dh.aks.ac.kr/Edu/wiki/images/c/c7/Q_A_1.pdf 2. 옥성득, (2020), 569-569에 설명이 있다.
<그리스도신문>의 정치 경제 기사에 대한 언더우드의 변증 H. G. Underwood to F. F. Ellinwood, Dec. 10, 1900 (#104) 옥성득 이만열 편, II (연세대 국학연구원, 2006), pp. 128-129. 언더우드는 기독교문명론 입장에서 통전적 복음(all around gospel)을 전하고, 한국을 기독교화하려면 정치, 경제, 과학 등 모든 분야를 기독교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바울이 말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만" 전한다는 말을 언더우드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천되는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고 재해석했다. 그는 이런 농사법 기사를 통해 신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농민 중에서 다른 기독교 기사도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면서 개종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조선 정부는 이런 의 개화적 문명적 가치를 인정하..
성경전서 한글 개역판은 왜 1956년이 아닌 1961판에 판권이 있나요? 1956년 판을 대폭 수정한 것이 1961년이므로, 대한성서공회의 의 최종 판권 연도는 1961년입니다. 아래 옥성득, (2020)을 보세요.
6.25전쟁과 1952년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출판 비화 2 화물칸 트렁크에서 순간적으로 꺼내어 손가방에 넣어 생존한 원고. --옥성득, (2020), 49-58. 1950년 2월 한글 개역판 성경전서 1차 원고가 완성되었다. 6월까지 구약 5경을 실험적으로 출판했다. 1950년 6월 28일 전쟁 발발 후 나흘 만에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 대한성서공회 건물에 있던 한글판 개역 성경전서의 1차 원고가 임영빈 총무의 기지로 시골 김치 항아리 안에 보관되면서 9월 28일 3개월 후 서울 수복 때 공회 건물은 전소했으나, 원고는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전 포스팅 참고) 임영빈 총무는 9월 말 이 김치 항아리를 파내어 원고를 들고 2차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공회 안에 있던 성경 50만 권도 공회 건물과 함께 불탔고, 수 톤에 달하는 인쇄지, 미제본 성서,..
언더우드의 한영문법, 1890 Horace G. Underwood, 韓英文法 한영문법 An Introduction to the Korean Spoken Language (Yokohama: Sheisi Bunsha, 1890) https://archive.org/details/introductiontoko00unde_1 일부 헐버트의 도움을 받았으나, 조력자는 송순용(宋淳用)이었다. 그는 천주교인이었으나 언더우드의 어학교사, 한국어 조사가 되어 한영문법(1890)과 한영자전(1890)을 만들고, 언더우드와 함께 일본 요코하마에 와서, 이 두 책의 교정 출간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