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6월 압록강 대안 지역 종교 통계
안동현, 집안현 등 압록강 건너 만주 지역 종교: 예수교인이 조직 훈련된 반면, 대종교와 천도교 계열 신종교는 포교소와 목회자 부족으로 비조직, 교인수도 신빙성이 없다. (당시 대안 지역 한인 인구는 6만 6천 여 명으로 인구의 약 10%가 종교인) “대안 종교별 신도수 (對岸 宗敎別 信徒數),” 『朝鮮日報』, 1921년 12월 2일. 금년 유월 조사한바 압록강(鴨綠江) 안(岸)에 이(移)한 조선인의 종교 급 종교유사단체(宗敎及 宗敎類似團體)를 계(界)한즉, 안동현(安東縣)에 예수교회당 3, 신도 753명 관전현(寬甸縣)에 예수교회당 3, 신도 65명 대도교(大道敎)에 교구실 3, 신도 165명 집안현(輯安縣)이 예수교회당 6, 신도 516명 대도교(大道敎) 교구실 7, 신도 1,597명 시천교(侍天敎)..
교회 분쟁, 난투극, 폭언, 망발의 시작, 1923년
사찰과 교회가 대형 건물 지으면서,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돈/재산 문제로 분쟁 신구 대결(청년층 대 노인층, 자유신학 대 보수신학, 한국인 대 선교사) 1923년 1월 서울 각황사에서 조선불교총무원과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사이에 사무실 문제로 난투극 4~10월 평양 장로교회, 서문외교회 건축 문제로 분규, 난투극, 김선두 목사 사임 5월 대구남성정교회 자치파(이만집 목사) 대 노회파(선교사파) 간 예배당 재산권 문제로 활극 11월에는 평양 회중교회 재산권 문제로 분쟁 1924년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 운동이 지속되면서, 평양 예수교를 비판하는 「開闢』지의 ‘예루살렘의 조선’ 담론 등장 군산, 재령, 해주, 개성 등 주요 도시에서 반기독교 운동과 김익두 부흥회 반대 운동 전개. 북간도 용정촌에서는 김익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