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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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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2. 12 “자기 생활에 철저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이완용이 죽다 1926년 2월 12일 이완용이 죽자당시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을 위한 라는 잡지에 ‘東邦生’의 이름으로 “李完用侯の死”(본문 제목은 “逝ける李完用侯”)라는 추도문이 실렸다. (1926년 3월, 제220호, 67-69.) 이완용이 을사조약과 일한병합에 나선 경위를 설명하면서, 배일파의 우두머리였던 친미개화파인 이완용이 친일파로 돌아서게 되자 일본인들조차 놀랐다고 쓰고 있다. 이완용은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했고, 친하게 지낸 일본인 역시 없었다. 일본인 관료들에게는 이토 히로부미의 신임을 얻은 자로만 알려졌고 능력과 신의가 있는 인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재산이 많지만 돈을 흥청망청 쓰지 않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돈을 모으고 잘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기가 죽으면 자기 일가를 보호해 줄 것은 ..
1922 공주 목회자 사경회 [이 한 장의 사진]ⓒ옥성득1922년 공주지역 감리회 목회자 사경회 1. 무어 목사가 가르치고 무어의 조사가 한국어로 도와주는 듯. 전도부인 4명도 참석. 남녀 분리대를 치우고 함께 앉았다. 삼일운동 후라 일본 순사가 와서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듣는 한국인 목사들의 태도가 여유롭다. 성경 공부하는 데 쫄 필요가 없다. 순사만 긴장하고 있다. 2. 한국인 목사들의 기도회 사경회 중 기도하는 목회자들. 삼일운동 실패 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던 때 사족) 1. 두 번째 사진에서 오른 쪽 문 쪽에 아이들이 보고 있다. 아이들의 신앙은 이런 기도 모습을 보고 자란다. 2. 내가 어릴 때에 전기가 없는 시골이라 교회에도 저런 등불을 켰다. 나무 마루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1921 게일의 창세기 1장 번역 게일의 창세기 1장 번역, 1921ⓒ옥성득이게 바로 그 유명한 한국어풍(Korean idiom)에 맞는 의역인 '짧게 줄인 풀이역' (abbreviated paraphrase)의 시초. (그 반대로 길게 늘인 풀이역은 공동번역이 시초.) 창세기 1장 첫 페이지에서 히브리어의 반복어구를 한국어법에 맞게 생략하였다. (예,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술술 읽힌다. 그러나 직역론자들 왈, "게일은 하나님을 없앴다." ... 결국 게일은 이원모 장로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개인역 성경전서인 (창문사: 1925)를 출간하였다. 자유 의역으로 된 최초의 성경전서였다. 게일은 (1) 사라지는 한국어를 안타까워 하며 한국어다운 한국어를 최대한 지키기 위해서 사전도 만들고 번역도 했는데, 최대 작업은..
한국교회사 요약 한국 개신교 역사 요약ⓒ옥성득2015년 3월 1일 40년을 한 세대 단위로 설정하고 민족성과 근대성의 관점에서 구분하면, 1세대(1884-1924)는 양자를 결합하여 민족의 희망으로 급성장한 시기, 2세대(1925-1964)는 양자의 상실로 위기에 처한 시기, 3세대(1965-2004)는 다시 양자를 결합하여 민주화와 통일과 경제 성장에 기여한 제2의 급성장기, 4세대(2005-2044?)는 민족과 사회에 발언권을 상실한 제2의 위기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29 대못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 [이용도 목사의 글, 1929년 1월] "시기 자만 분열은 주님의 가슴을 크게 파상하는 大釘(큰 못)입니다. 이 大釘을 가지고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가 누구입니까?예수를 모른다는 자가 아니요, 예수님의 제자 유다가 아닙니까?또 자칭 피소자인 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이 아닙니까? 오늘날도 이 대정으로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찢어 놓아주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자는 불신자도 아니요, 평신도도 아닙니다.아! 각 교파의 重職들!시기와 자만을 그대로 품고자기를 내세우려는 현대의 대제사장들이여!분열이 얼마나 큰 죄악이요예수님을 두 번 못박는 대정임을 깨달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