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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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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로잔 선언과 복음주의자의 "사회적 책임" [Lausanne Covenent, 1974] 50년 전 로잔 선언 지금도 세계 개신교 복음주의 선교인들의 신앙고백으로 이슈는 5항. 당시 로잔 관계자들은 한국의 박정희 유신 독재와 인권 문제도 로잔 대회를 특집으로 다룬 1974년 9월호 The Reformed Journal에서 거론했다. (아래 이미지 참조) 당시 한국 인구의 7%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 중 일부는 박 정권의 유신 독재를 반대하며 항거했다. 로잔 선언이 없어도 항의했지만, 이 선언(비록 늦게 소개되었지만)으로 청년 복음주의자들의 의식이 깨이고 사회 참여에 나선 것이 1980년대 중반이다. ---------------- 5.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요,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
사회계층과 교파주의, 1972 장로회신학대학원 특강 시리즈 "한국대중과 복음선교"에서 문상희 교수는 “사회계층적 입장에서 본 한국기독교의 성격 분석”을 발표했다. 그 내용이 1972년 3월 18일자에 실려 있다. 여기서 교회를 상류층 교회, 중류층 교회, 하류층 교회로 구분하고, 그 성격을 논하는 부분만 확대해서 보자. 1970년대 초에 벌써 교회가 중산층 교회로 전락하고, 양극화로 인해 사회 실패자들이 신흥종교로 이단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교회의 체질 개선 없이는 이런 계층화와 하층의 교회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예일대 H. Richard Niebuhr 교수의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 (1929)에서 논한 사회계층과 교회 유형을 한국 상황에 적용한 것으로, 니버 교수는 ..
엑스플로 74 전도대회 김준곤과 조용기의 부상: 유신 체제 지지로 혜택 1974년 복음주의 교회들은 ‘민족 복음화’를 내세우고 ‘총동원 전도’ 방법을 논의한 반면, 에큐메니컬(NCC) 진영은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며 민주주의 국가를 염원했다. 7월 16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차 로잔대회에는 한국에서 조종남, 한철하, 조동진, 김옥길 등 65명이 참석했다. WCC 진영의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의 1973년 방콕대회가 통전적 구원(“온교회가 온복음을 온세계에”)과 상황화 개념을 제시하고 복음이 전파된 나라에서 외국선교사와 선교비를 감축하는 모라토리움을 주장하자, 복음주의 진영에서 활로를 모색한 대회였다.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가 초안한 로잔 언약에 명시된 선교 신학은 복음 전도의 우위성을 확인했으나 사회적 ..
민족 복음화 대성회, 1977년 민족복음화성회준비위원회는 3년간 준비한 후 평양대부흥회 70주년인 1977년 광복절에 서울 여의도에서 77민족복음화대성회(고문 백낙준, 한경직, 대회장 김세진, 위원장 신현균)를 한국인만의 힘으로 개최했다. 대회 표어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한국인에 의해서, 오직 성령으로”가 보여주듯이, 민주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복음전도를 목표로 하였으며, 외국인 강사가 주도한 앞의 두 대회와 달리 “한국인에 의한 자주적인” 부흥회로 신현균 목사가 주강사로 집회를 인도했다. 이에 앞서 전국 300여 곳에 ‘77성회 지구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600여 명의 한국인 강사가 부흥회를 열고 복음화와 비상시국을 위해서 기도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 이어 1976년 말 당선된 카터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미군 ..
1972년 석굴암 불상 도안 1만원 권 지폐 사건
1972 문동환, 문상희 장신대 강의 "한국 대중과 복음 선교" 1972년 장신대 대학원 세미나 특강 시리즈: 30대 소장들 등장하여 한국교회 사회계급구조 분석 후 하층계급 침투 선교시급하다... 사회적 구원 없이 개인구원 불가하다 주장. 7. 문동환 교수 강의, "교인의 사회 계층에 대한 고찰," , 1972년. 8.문상희 교수 강의, "사회계층적 입장에서 본 한국기독교," 1972년. 벌써 이때 중산층교회 체질 개선, 구조혁신, 양극화로 신흥종교(이단) 범람 이야기.
1975 박형규 목사 1938-45년 북한에서 교회가 침묵했다면 기독교는 해방 이후 남한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다. 1960년에 교회가 침묵했다면 1960년대에 교회는 죽었을 것이다. 1972-79년에 교회가 침묵했다면 기독교는 1980년대에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80-87년에 교회가 침묵했다면 기독교는 1990년대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 교회가 교회 내부의 부패와 불법에 대해서마저 침묵한다면 2020년대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1970년대 교회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 여기 박형규 목사의 대담 기사가 있다.
함석헌, 이 나라가 뉘 나라냐, 1970 함석헌, , 1970 In the beginning, there was the Word. (St. John) In the beginning, there was the act. (J. H. Fichte) In the beginning, there was resistance. (Ham Seokheon) In the beginning, there was the Dao. (Gospel of John/ Chinese and Korean translations, 1856, 1882) Hahm moved from resistance to Dao in his later years. 태초에 저항이 있었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생명-자유-저항은 함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