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회 분쟁: 김선두, 길선주, 변인서 목사 배척 사건, 1923-1934
평양기독교역사 9, , 2019년 10월호. 1920년대는 분규, 파업, 동맹휴학의 시대였고, 장로교회도 안팎으로 투쟁과 분열의 시대였다. 밖으로 사회주의와 진화론으로 무장한 반기독교 운동과 대결하던 교회는 교회 분쟁, 미션스쿨 동맹휴학, 병원 간호사 파업이 지속되면서 내부 분열로 힘을 잃고 사회적 영향력을 점차 상실했다. 기독교 수용 40년 만에 쇠퇴기가 시작되었다. 이 글은 학교나 병원 분쟁은 제외하고 교회 분쟁만 다룬다. 1910년대 초에 시작된 교회 분열이 선교사의 권위주의에 반발한 한국인 목사들의 자유교회 운동이라면, 1920년대 중반 이후 10년간의 교회 분열은 노쇠한 당회(선교사, 한국인 목사와 장로)의 독재와 권위주의에 반발한 신세대 평신도들의 개혁 운동이었다. 교회 분규는 장로회 정치를 ..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다시 읽기
옥성득,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다시 읽기," , 2019년 5월호 ‘평양 대부흥’은 1907년 1-6월 평양 시내 장로회와 감리회의 교인들과 학생들에게 일어난 회개와 각성 운동이었다. 성령 강림으로 심각한 죄를 회개하고 공개 자백, 중생 체험, 용서, 배상, 헌신을 통해 교회가 변하고 많은 불신자들이 개종하였기에 ‘대’부흥이었고, 평양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된 점에서 ‘운동’이었다. 한국교회는 이를 처음부터 부흥이나 대부흥(great revival)으로 불렀고, 종교 각성(awakening)이나 오순절(Pentecost)로도 불렀다. 그러나 이 부흥 운동은 20세기 초의 오순절 운동과는 상관이 없었다. 이 글에서는 ‘평양 부흥’으로 부르겠다. 이 글은 여러 책에 나오는 평양 부흥의 배경,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