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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성결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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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회 정운학 목사 일대기 만주 심양에서 양떼를 지키다가 숨진 선한 목자 정운학(鄭雲鶴, 1910-1966?) 목사의 일생이다. 일본 유학 중에 개종하다 정운학은 1910년 인천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인천상업전수학교에 재학 중 미술에 뛰어난 재질을 보여,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함으로 그는 장차 화가가 되려는 희망을 품었다. 그는 전수학교 졸업과 동시에 평소의 꿈대로 동양의 최고 미술학교인 동경미술학교에 지원, 거뜬히 합격했다. 당시 조선인으로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만큼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이 심했다. 그는 동경의 어느 일인의 하숙집에 기거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그림도 열심히 그렸다. 동료 학생들은 그의 이름 대신에 ‘죠센징’이라고 불렀다. 죠센징은 조선인이란 일어이지만, 멸시하는 이름이었..
증도의 전도사 문준경 문준경(文俊卿, 1891-195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6631 1891년 2월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17살 때인 1908년 3월 결혼했지만 남편이 제대로 돌보지 않아 20여 년을 시부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목포 북교동성결교회에서 기독교에 가입하고 경성성서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개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2년부터 신안군 지역을 순회하며 증동리교회를 중심으로 진리교회와 대초리교회 등 여러 교회들을 설립했다. 그는 지역을 순회하는 도중 주민들의 부탁으로 우체부의 역할도 했고, 여러 섬들을 왕래하느라 1년에 아홉 켤레나 고무신을 바꾸어 신었다고 한다. 1943년 일제의 종교탄압이 증동리교회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