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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8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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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 사진은 없다 2: 1894년 상궁 사진 다음은 1894년 11월 뉴욕에서 발간된 Demorest's Family Magazine에 실린 "The Queen of Korea" 기사이다. 저자는 한국을 방문했던 유명한 기독교인 작가, 여행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지리학자였던 카펜터(Frank G. Carpenter, 1855-1924)였다. 따라서 사진과 캡션은 과장없이 사실 그대로이다. 그의 글은 한국의 왕비에 관한 것이지만, 민 왕후의 사진은 없고, 대원군과 궁중의 높은 상궁, 왕비의 관비, 고위 관료 양반 사진만 있다. 그 중의 한 장이 11월호 표지와 다섯 번째 페이지에 있는 "The Queen's Chief Lady in Waiting"(왕비를 모시는 상궁)이다. 이 사진은 한때 민비 사진으로 알려졌으나, 이 잡지와 언더우드 부인의 ..
1897 부활론 "부활론," , 1897. 4. 15.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앞서는 부활론의 하나. 성경에 없는, 누에가 변하여 나비가 되듯이. 메타모르포시스로(metamorphosis: 완전 變態 transformation) 비유.
4월 24일의 두 사건 125년 전 4월 24일의 두 사건: 동학운동 녹두꽃이 떨어지고 불교 부흥의 계기가 마련되다 1. 새벽에 동학혁명의 우두머리 전봉전 장군을 처형 (“京城特報 四月 二十四日 特派員發,” 1895년 5월 7일.) 23일 오후 4시 경 사형 선고 후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최영창과 함께 교수형에 처했다. 법무협판 이재정의 판결-법무대신 서광범의 보고-국왕 고종의 윤허로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고등법원 판결은 이 협판과 장박 참의, 일본영사관 우치다 사다츠치(内田 定搥) 일등영사로 구성된 3인 판사들이 내렸다. 당시 교수형은 대개 동대문 밖 남벌원에서 실시했고, 처형된 자의 목은 3일간 서소문 밖에 효시했다. 그러나 전봉준의 경우는 효시하지 않았다. 이에 양반들은 “역적을 목 베어 조리돌리지 않았다”고 개화..
Before & After 2: 한국 여성의 변신, 130년 Western Orientalism & Double Orientalism (Japanese Orientalism) 시대는 갔다. 서울을 시궁창에서 돼지가 노는 불결한 비위생의 나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식민지로 만들던 1900년 전후, 그 구시대는 가고 이제 한국이 의료 방역 체계 최고 수준의 나라가 되었다. 여성들도 기생으로 양반이나 수종들던 시대를 지나,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반창고 훈장을 단 간호사들의 여성 투혼의 시대로 바뀌었다. The Hermit Nation 조선이 세계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한국 여성 오리엔탈리즘의 종언이다. 188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심지어 오늘까지 한국 "The Land of Morning Calm" and the land of dancing girl..
Before & After 1: 위생과 방역의 변신 130년 위생 오리엔탈리즘의 종언: Western Orientalism & Double Orientalism (Japanese Orientalism) 시대는 갔다. 일본이 서울을 시궁창에서 돼지가 노는 불결한 비위생의 후진 도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던 1900년 전후, 그 구시대는 가고 이제 한국이 의료 방역 체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식 봉쇄와 통제가 아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의 참여에 의한 민주적 전염병 관리 체계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민주주의와 방역 선진국의 첨병이 되었다. ---정진호(한동대) 교수: (1) 만일 중국만이 첨단 IT인프라와 그동안 갖추어온 전국민 감시 시스템인 텐왕(天網) 시스템을 가동하여 코로나를 조기 종식시킬 수 있음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서구사회가 견..
1891 북한과 만주 횡단 전도여행 한국교회사에서 최장거리 도보 전도여행, 마페트, 게일, 서상륜, 백홍준, 1891년 2월-5월 지도 수정: 옥성득, (짓다, 2016), 269쪽에는 이들의 여행 지도를 다음과 같다고 썼다. 서울에서 출발한 서상륜, 마페트, 게일은 의주에서 3월 29일 부활주일을 기념하고 10명에게 세례를 주고 성찬식을 거행했다. 서상륜은 서울로 돌아가고, 대신 의주의 백홍준이 봉천까지 두 선교사들 동행했다. 그러나 영구로 가지 않고 로스 목사가 있는 봉천(심양)으로 바로 갔다. 따라서 지도는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세 사람이 봉천에 가서 본 교회가 바로 다음 봉천기독교예배당이었다. 기독교는 천천히 걸어가는 종교, 길 위의 종교이다. 예수님은 3년간 걸어 다니며 제자들을 훈련했고, 바울은 몇 차례 선박 여행을 제외하면 ..
원문을 인용할 때는 정확히 해야 초기 한국 개신교의 반봉건적 개혁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인용문은 1899년 3월 1일자 에 실린 다음 "내보" 소식이다. 자주 인용되었기 때문에 유명한 글이다. 먼저 원문을 보자. 그런데 한국기독교사연구회, (기독교문사, 1989 초판), p. 261은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붉은 칸 부분을 원문에서 확인하면 "유세력한 양반"-->"엇던 유세력한 량반"으로; "그 까닭인듯" --> "이 ᄭᆞ닭인듯"; "하느님을" --> "하ᄂᆞ님을"으로 바르게 고쳐야 한다. 더욱이 이 책의 인용문은 현대 철자법으로 고친 것도 아니고,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고, 필자가 자의적인 철자법으로 옮겨 놓았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다음과 같이 현대어로 옮겨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
신학과 교회의 근원은 학문 도학과 교화의 근원은 격치요, 교회의 근원은 격치학이니라 (죠션크리스도인회보, 1898. 1. 19) = 신학과 제자화의 근원은 학문이요 교회의 근원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다. 초기 한국 교회는 대학의 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원리와 프로그램을 인정하면서 격물치지의 학문을 강조했다. 유교와 달리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성의정심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할 수 있으므로 기독교가 더 우월하다고 논증했다. 곧 인륜과 물륜에서는 유교와 유사하나, 천륜에서 초월적 차원을 가지므로 한국의 문명 교화에 더 나은 종교하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시대나 독재 시절에 국가주의의 우민 교육 정책에 눌려, 교회는 학문과 신학을 버리고, 교회 부흥과 성장에만 치중했다. 그 결과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