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에서 부르기 시작한 <무궁화가>는 그 후렴이 애국가와 동일하다. 1890년대 후반부터 배재학당 등에서 부르기 시작한 창가와 애국가들이 모여 1908년 윤치호의 <찬미가>에서 애국가로 편집되었을 것이다.
일부에서 다음과 같이 마구 주장한다.
민족반역자 윤치호가 노랫말을 짓고 일본제국의 부역자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 문제를 지적해 온 경희대 법대 강효백 교수는 최근 무궁화가 과연 나라꽃일 수 있느냐를 문제 제기하고 있다. 그는 무궁화가 한국의 나라꽃은커녕 일본제국주의 식민화정책 전략의 일환으로 교묘하게 한국의 나라꽃으로 둔갑시켜 놓았음을 근거를 대고 말한다. 그는 일본에서의 목근(木槿 무궁화) 숭상이 뿌리가 깊고 널리 보편화 됐음을 역사 고증과 실증으로 내보이고 있다. 무궁화 목근 복장(服裝) 기모노 검색만으로도 약 91,600건, 패션 신발 지갑 장신구 생리대 문양까지 무궁화(木槿 服裝) 문양은 오래전부터 오늘까지 광범위하게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말한다. 무궁화 문양 일본 문화재(木槿 文化財)가 약 109,000건인데 일본 역사 기록으로 710년 나라(奈良) 시대부터 1868 에도(江戸) 시대에 걸쳐 일본 무궁화 문양 문화재가 광범위 했음을 증거를 대고 말하면서, 한국 역사에서 위와 같은 기간인 710년 ~ 1868년 중에 무궁화 응용 옛 문화재 유물은 단 1건도 없다는 사실을 강 교수는 지적한다. 흔히 알고 있는 일제의 무궁화 탄압 때문에? 강 교수는 허구로 각색된 무궁화 나라꽃 관념은 철저하게 일본제국주의 식민화 정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애국가를 작사한 민족반역자 윤치호가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를 노랫말로 집어 넣어 유포시킨 까닭으로 본다. 강 교수는 “이래도 무궁화가 우리나라 전통 국화(國花)냐? 일본 전통 신화(神花)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실무근이다. 근(槿)은 무궁화로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무궁화가 많이 자라 근역(槿域)이라 하였다. 서기전 3세기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과 그 변방의 지리·풍속·산물 등에 관하여 기술한 『산해경(山海經)』 권9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군자국(君子國)은 대인국(大人國) 북쪽에 있다.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 짐승을 주식으로 한다. 두 마리의 큰 호랑이를 옆에 두며 사냥을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무궁화[槿,一槿菫·一作薰]라는 풀이 자라는데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죽는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죽는다’는 말은 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무궁화에 대하여 기록된 가장 오래된 전거이다. 근역은 ‘근화지향(槿花之鄕 또는 槿華之鄕)’으로 불리기도 하며,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진 뒤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이라는 서화가들에 대한 소개서가 나오기도 하였다. ---민족문화대백과
발해에서 무궁화는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을 상징했다: 780년 발해의 정혜공주 묘지 (貞惠公主 墓誌): "... 생각건대 공주가 태어나매 어려서부터 진실로 아름다웠고, 비상하게 총명하고 슬기로워 널리 듣고 높이 보았다. 궁궐의 모범이 되었고 東宮의 누나가 되었으니, 옥같은 얼굴은 무궁화만이 비길 수 있었다. ..."
이후 용례는 생략한다. 1890년대 후반 독립협회와 배재학당 등에서 무궁화가를 부르고 1900년대 애국가에 무궁화를 넣은 것이 친일파의 소행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1890년대 만들어진 애국 창가에서 무궁화가 자주 등장한다. 그것이 애국가에 들어갔다. 이게 왜 왜색인가?
1. 기원절 축수가, 무궁화가, 애국가
"대죠션 개국 오백," <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
대조선 개국 505회 기원절 축사를 8월 13일 오후 3시에 독립관에서 행하는데, 국기를 높이 달고 그 아래 화초로 단장하였는데, 정부 대소 관인과 여러 학도와 인민이 많이 모였으며, 각국 공영사와 신사와 부인들이 각기 예복을 갖추고 제제히 앉았는지라. 그 축사하는 절차를 보니, 처음에는 배재학당 학원들이 축수가를 불러 가로되, “오백 여 년 우리 왕실 만세 무궁 도우소서” 찬송 하니, 외국 부인이 악기로 율에 맞추어 병창 하더라. 둘째는 회장 안경수씨가 개회 하는 뜻을 연설하고. 셋째는 한성 판윤 이채연 씨가 학부 대신 이완용씨를 대신 하여 국민의 당연히 할 직무를 연설 하고. 넷째는 배재학당 학원들이 무궁화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나라 우리임금 황천이 도우사 임금과 백성이 한 가지로 만만세를 길거하여 태평 독립 하여 보세” 하니 외국 부인이 또 악기로 율에 맞추어 병창하더라. 다섯째는 미국 교사 아펜젤러 씨가 영어로 조선에 거류하는 외국 사람들을 대하여 각기 당연히 할 직무를 연설 하며, 여섯째는 의사 제손 씨가 조선 관민들을 대하여 진보 하는 것을 연설하고, 일곱째는 배재학당 학원들이 나라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니 외국 부인이 또 악기로 율에 맞추어 병창 하더라. 여덟째는 전 협판 윤치호 씨가 기원절일 문제를 연설한 후에 탁지대신 심상훈 씨가 제손 씨와 아펜젤러 씨의 연설한 것을 감사하다고 말하더라.
독립협회가 기념한 기원절 행사 때 축수가, 무궁화가, 애국가를 제장했다.
2. 무궁화가, 1899-1910
3. 1908년 무궁화는 대한제국의 상징, 대한매일신보, 1908. 8. 6
4.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원절 경축가
임정은 1919년 음력 10월 3일부터 대종교 주최로 단군 개국 기원절을 기념했다. 1920년부터는 양력 10월 3일로 기념식을 정했다. 이때 부른 기원절 경축가는 <일본외무성문서 (불령단관계잡건)>에 나온다.
1. 기뻐하세 오늘 우리 국민 기원절 / 이천만 동포들이여 경축하세 /우리들의 새 생명을 되찾는 날 /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경축하세
〈후렴〉 경축하세 경축하세/ 우리 개국 기원절 경축하세 /경축하세 경축하세 /우리 대한민국 기원절이라네
2. 오늘의 기원절은 첫 번째로서 / 우리 이천만의 큰 영광이네 / 우리가 독립을 선언한 지 겨우 1년 / 이와 같은 성적을 경축하세
3. 삼천리 강산 무궁화 강산 / 너의 화려함은 세계에서 제일이네 /동양의 요새이며 동양의 제방 / 우리 민국이 이렇지 않은가?
4. 한때 더럽혀진 우리의 화려 강산 / 오늘이 되니까 너도 뛰네 /백두산의 하얀 돌 너도 역시 뛰고 / 압록강의 물고기 너도 뛰네
5. 오늘을 맞이한 이천만 민족 / 너의 10년의 고통 어떠하였나? /오늘은 기원절 이것을 경축하고 / 만세까지라도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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