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

(87)
침례교회 선교사로 성공회 성누가병원에서 일한 맬컴 의사, 1896년 내한 선교사 중에 첫 미국 침례교회 의사는 1895년 인천 성공회 성누가병원에 부임한 맬컴(Fullerton B. Malcolm, 1850-1897.1.3)이다. 맬컴은 영국 리버플에서 출생했다. 캐나다로 이민 갔으나, 토론토에서 우드스탁대학을 다니다가, 미국으로 가서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 이어서 시카고대학교 의대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선교사로 지원했다. 1893년 6월 12일 미국침례교회 연합선교회(American Baptist Church Missionary union) 파송으로 중국 서부 쓰촨성에 갔으나, 1895년 폭동으로 추방되어 해변가로 나왔다. 이때 제물포 성누가병원의 랜디스(Eli B. Landis, 1865~1898) 의사는 서울 성마태병원으로 자리를..
[4월은 길다] 1일 유길준의 발간(1895) 2일 동아일보 창간(1920) 3일 조선기독교대표자 나라신궁 참배, 동대사 앞 촬영(1943) 제주 4.3 사건 발발(1948) 5일 최제우 동학 창도(1860) 언더우드, 아펜젤러 부부 인천항 도착. 언더우드만 서울 입성(1885) 5일 남궁억 별세(1939) 6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1882) 7일 창간(1896). 영문판은 헐버트 편집 8일 하멜 일행 제주도 파선(1653) 정약종 순교(1801) 10일 상해 임시정부 조직(1919) 서울의 기퍼드 목사 별세(1900), 충격으로 부인도 5월 5일 별세 숭실대 모우리 교수 평양지방법원 1심 재판, 6개월 선고(1919) 11일 마산 앞바다 김주열 시체 떠올라 4.19 기폭제가 됨(1960) 12일 스코필드 의사 별세(..
그런 상황에 "만일" 당신이 그럴 수 있다면 .... (언더우드) 1921년 언더우드 부인이 쓴 남편의 전기 Underwood of Korea 마지막에 나오는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 "IF" 부인은 이 내용이 말년의 언더우드 목사를 가장 잘 묘사하기에 인용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 시를 영문과 4학년 때인 1986년에 수정하여 완성했다. 지금 보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어서 새로 번역하고 싶지만 이미 아래 책 마지막 부분에 인쇄되어 있으니 그대로 인용한다. 그가 여정을 마치고 본향으로 간 지 110년이 가까이 온다. 그를 바라보면서 40년 간 연구하며 살았으나, 그에 따라가지 못하니 못내 부끄럽다.
밀러(민로아) 부부, 1899년 다음은 흔히 목포의 유진 벨과 로티 벨 가족 사진(1901년, 헨리와 샬로트)으로 알려져 있고, 유진벨 기념관 웹사이트에도 올라가 있으나, 초기 단체 사진에 나오는 선교사들을 확인해 보면, 이들은 서울에서 활동하던 밀러(Frederick Scheiblin Miller 閔老雅, 1866-1937) 가족 사진이다. 부인 안나(Anna Reinecke Miller, 1865-1903)가 1903년 6월 17일 복막염으로 별세했으므로, 그 전에 촬영했다. 촬영시기와 장소를 짐작해 보면 1899년 피츠버그이다. 사진의 아이들은 장녀 리세트(2세)와 장남 윌리엄 뉴톤(4세)이다. 부인은 아래 1891년 사진의 옷과 동일한 것을 입고 있다. 1898년 10월 아들을 잃고나서 1899년 4월 부인의 고향인 피츠버그로 ..
감리회 첫 선교사는 아펜젤러인가 스크랜턴인가? '첫 선교사는 알렌인가 매클레이인가'(새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2회)와 연관되는 주제가, 감리회 첫 선교사는 매클레이, 아펜젤러, 스크랜턴 중 누구인가라는 문제이다. 2회에서 매클레이는 감리회의 첫 '방문 선교사'임을 밝혔다. 오늘 주제는 방문 선교사가 아니라 감리회의 정식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고 임지인 서울에 거주하고 정착한 첫 선교사는 누구인가이다. 1. 감리회의 첫 주재 선교사는 스크랜턴이다 2015년 3월 20일 자 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3월 17일 개최한 '한국 감리교회 개척 선교사의 영향과 교훈' 심포지엄을 보도하면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누구인가"라며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장로교회의 언더우드와 감리교회의 아펜젤러를 꼽는다. 1885년 ..
1887년 9월 로스의 서울 방문과 새문안교회 조직 J. F. Schöneiche to H. F. Merrill, “Monthly Report,” 24 October, 1887 (No. 3.), 海關稅務司(朝鮮) 편, 『海關誌 Jenchuan』 (국립중앙도서관 古貴 659-14), 254~255. 한반도의 개항을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쇠네케가 메릴 총세무사에게 올린 10월의 월례 보고서는 9월 17일부터 10월 16일까지를 다룬다. 인천항 방문자들의 이름과 직책을 기록하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로스였다. 전문을 보자. 방문자. 8월[음력]에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제물포를 방문했으므로, 저는 더 저명한 분들만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곤도 Kondo(상해 총영사로 임명된 타카히라 후임으로 서울에 가는) 신임 일본 대리대사, 러시아 대리대사..
김필수, "신생활," 1923 김필수, "신생활," 제3권 제1호 통권92호 (1923년 1월), pp. 5-8. 국회도서관에서 '신생활'로 검색하면 전문을 볼 수 있음 https://www.nanet.go.kr/main.do
김명식의 김익두 목사 비판, 1924년 김명식, "김익두의 미망을 논하고 기독교도의 각성을 촉하노라," 4권 6호(1924년 6월):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