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85) 썸네일형 리스트형 언더우드가 말년에 가졌던 시적 비전 다음은 언더우드 부인이 쓴 언더우드 전기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키플링의 시 "IF"이다. 부인은 이 시가 말년의 언더우드의 모습, 그가 가진 시적 비전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썼다. 이만열 역, (1990), 340-342에 나온다. 내가 영문과 학부 4학년 때 번역했다.한 줄로 편집해 보자. 내 순서에 내가 할 일을 위해 심장과 신경과 근육을 다 쏟아부을 수 있다면그리하여 결국 사람이 된다면우리는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밀러 목사 가족 [한국교회사 사진 오류 수정] 이 사진의 인물들은 누구일까요? 1. 유진 벨 가족은 아닙니다.2. 언제 어디서 촬영했을까요? 한국이 아닙니다.서울에서 활동하던 밀러(Frederick Scheiblin Miller 閔老雅, 1866-1937) 가족 사진이다. 부인 안나(Anna Reinecke Miller, 1865-1903)가 1903년 6월 17일 복막염으로 별세했으므로, 그 전에 촬영했다. 촬영시기와 장소를 짐작해 보면 1899년 피츠버그이다. 사진의 아이들은 장녀 리세트(2세)와 장남 윌리엄 뉴톤(4세)이다. 부인은 1891년 사진의 옷과 동일한 것을 입고 있다. 1898년 10월 아들을 잃고나서 1899년 4월 부인의 고향인 피츠버그로 안식년을 휴가를 갔는데 이때 찍은 듯하다. 집 모습이 미국 현.. 침례교회 선교사로 성공회 성누가병원에서 일한 맬컴 의사, 1896년 내한 선교사 중에 첫 미국 침례교회 의사는 1895년 인천 성공회 성누가병원에 부임한 맬컴(Fullerton B. Malcolm, 1850-1897.1.3)이다. 맬컴은 영국 리버플에서 출생했다. 캐나다로 이민 갔으나, 토론토에서 우드스탁대학을 다니다가, 미국으로 가서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 이어서 시카고대학교 의대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선교사로 지원했다. 1893년 6월 12일 미국침례교회 연합선교회(American Baptist Church Missionary union) 파송으로 중국 서부 쓰촨성에 갔으나, 1895년 폭동으로 추방되어 해변가로 나왔다. 이때 제물포 성누가병원의 랜디스(Eli B. Landis, 1865~1898) 의사는 서울 성마태병원으로 자리를.. [4월은 길다] 1일 유길준의 발간(1895) 2일 동아일보 창간(1920) 3일 조선기독교대표자 나라신궁 참배, 동대사 앞 촬영(1943) 제주 4.3 사건 발발(1948) 5일 최제우 동학 창도(1860) 언더우드, 아펜젤러 부부 인천항 도착. 언더우드만 서울 입성(1885) 5일 남궁억 별세(1939) 6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1882) 7일 창간(1896). 영문판은 헐버트 편집 8일 하멜 일행 제주도 파선(1653) 정약종 순교(1801) 10일 상해 임시정부 조직(1919) 서울의 기퍼드 목사 별세(1900), 충격으로 부인도 5월 5일 별세 숭실대 모우리 교수 평양지방법원 1심 재판, 6개월 선고(1919) 11일 마산 앞바다 김주열 시체 떠올라 4.19 기폭제가 됨(1960) 12일 스코필드 의사 별세(.. 그런 상황에 "만일" 당신이 그럴 수 있다면 .... (언더우드) 1921년 언더우드 부인이 쓴 남편의 전기 Underwood of Korea 마지막에 나오는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 "IF" 부인은 이 내용이 말년의 언더우드 목사를 가장 잘 묘사하기에 인용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 시를 영문과 4학년 때인 1986년에 수정하여 완성했다. 지금 보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어서 새로 번역하고 싶지만 이미 아래 책 마지막 부분에 인쇄되어 있으니 그대로 인용한다. 그가 여정을 마치고 본향으로 간 지 110년이 가까이 온다. 그를 바라보면서 40년 간 연구하며 살았으나, 그에 따라가지 못하니 못내 부끄럽다. 김필수, "신생활," 1923 김필수, "신생활," 제3권 제1호 통권92호 (1923년 1월), pp. 5-8. 국회도서관에서 '신생활'로 검색하면 전문을 볼 수 있음 https://www.nanet.go.kr/main.do 김명식의 김익두 목사 비판, 1924년 김명식, "김익두의 미망을 논하고 기독교도의 각성을 촉하노라," 4권 6호(1924년 6월): 2-7. 언더우드와 YMCA 전택부, "언더우드 박사," (1978년 4월): 10. 언더우드 박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만큼 그는 너무나 유명한 선교사이다. 그는 첫째로 한국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교회의 창설자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YMCA 창설의 최초의 발의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887년 새문안교회를 창설하고 보니 그는 전도자로서의 대업을 성취한 느낌이었다. 허나 한구석 허전한 것은 아직도 이 나라 문화계에는 파고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모여드는 교인들이란 전부가 무식대중이었고 지식인은 하나도 없었다. 무식한 교인들이 먼저 교회당을 점령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비록 유식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싶어도 교회에 나올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관념으로써는 무식대중과 유식한 사람들은 같이 앉을 수가 없었기 때.. 이전 1 2 3 4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