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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잡지 기고문, 연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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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평양 양란(洋亂)과 토마스의 순교, 그 해석사 (1) (2) 옥성득, "1866년 평양 양란(洋亂)과 토마스의 순교, 그 해석사 (1) (2)," (2018. 12) ; (2019. 1): 187-200. 평양 기독교 역사는 1866년(병인년, 고종 3년) 9월의 평양 양란(제너럴셔먼호 사건)과 토마스(Robert J. Thomas, 1840-66) 목사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지난 150년간 토마스 사건은 몇 번의 계기를 통해 재구성되면서, 신학교 교회사 교수 중심의 ‘선교사–순교설’과 일반대 한국사 교수 중심의 ‘제국주의자–처형설’이 대립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해방 이전에는 토마스의 죽음을 무모한 선교로 비판하다가 순교로 기념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해방 이후에는 찬양–비판–찬양이 교차하고 있다. 평양 교회사는 출발부터 논쟁사인 셈이다. 이 글은 자료 문제를..
1925 '조선의 예루살렘 평양’ 담론의 실상 옥성득. "‘조선의 예루살렘 평양’ 담론의 실상." 기독교사상, 717 (2018.9): 9-18.
1903 백범 김구의 개종과 초기 전도 활동 옥성득, "백범 김구의 개종과 초기 전도 활동," 47호 (2001): 27-31. 1. 서론지금까지 김구(金九, 1876~1949)와 기독교의 초기 관계에 대해서는 선생이 1929년에 쓴 자서전 《백범일지》(白凡逸志) 상권에 나오는 사실을 그대로 수용해서 이해하였다. 그 내용은 그가 27세이던 1902년 친구 우종서(禹鍾瑞) 조사(助事)의 권유로 입교하기로 결심하였으며, 1903년 2월 황해도 장연읍 사직동에 이사한 후 예수교를 믿으며 교육에 전력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진남포 엡웟(Epworth, 懿法) 청년회 총무로 서울 상동교회에 와서 상소운동 등 구국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백범일지》에 나오는 자술을 뒷받침해 줄 다른 사료들이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