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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문서, 성서, 번역

1908 찬숑가

2024년 10월 12일자 국민일보에 다음 기고문이 게재되어 있다.

이 글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1) 반우거(G. W. Bonwick)를 Bunker로 본 것. 본윅과 대한예수교서회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2) 1908년 찬송가에 대한 피터즈의 기여를 지나치게 강조한 점. 편찬자인 벙커, 베어드 부인, 밀러 등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3) 피터즈를 구약 번역의 효시로 본 점. 한글 구약번역의 효시는 1896년 존스의 <구약공부>와 1897년 아펜젤러가 <죠션크리스도인회보>에 연재한 구약 성경 번역이었다. 피터즈의 <시편촬요>는 1898년에 출간되었으므로 효시가 아니며, 개인역으로 남았다. 1911년 구약전서의 시편은 언더우드 역이었다. (4) 찬송가(1908)의 서문을 지나치게 수정, 생략하여 본 뜻을 죽인 점. 원문을 현대어 맞춤법으로 고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 (5) 1905년 연합운동의 첫 열매가 찬송가라고 한 점. 찬송가는 여러 결과 중 하나였지, 첫 열매는 아니었다. 첫 성과는 1905년 11월부터 예수교서회가 발간한 Korea Mission Field. 영문 잡지인 감리회의 Korean Methodist와 장로회의 Korea Field를 하나로 통일하여 발간했다. 찬송가공회 입장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곤란하다.

1906년 제2차 총공의회에서 기존 찬송가를 토대로 개정하되 존경어를 사용하고 구조는 명확하며 교리에 부합하는 내용을 수록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1908, 한국 개신교의 첫 연합 찬송가인 찬숑가가 가사판(262)으로 발행됐고, 이듬해에는 악보판도 출간됐다. 그 서문을 보자. (위 기사에서 붉은 네모 안 문단)

대저 노래라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저절로 소리에 말하여 나는 것이라. 그런고로 옛날에도 즐거움을 충만히 얻은 이들이 모두 기쁘게 노래하였으니, 공자도 읊어 노래하고, 다윗도 항상 시로 노래하였으며, 주께서도 시를 노래하셨으니, 이로 보건대 주를 믿는 자들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런고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마음을 같이하며 기운을 화평하게 하고 한 곡조로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주의 빛이 한국에 임한 후에 감리회에서는 찬미가를, 장로회에서는 찬셩시와 찬양가를 부르매, 양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한 곳에서 예배볼 기회를 만나면 찬송하는 노래를 피차에 같이 부르지 못하여 주를 찬송하는데 서로 즐거움이 온전치 못하더니,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기회를 주사 두 회의 노래를 합하여 한 책을 만들어 이름을 찬숑가라 하였으니, 이 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참 아름다운 찬송이로다.

찬송가 135장을 예로 보자. 시각장애인 작가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 작사,(W. Howard Doane, 1832-1915) 작곡의 이 곳은 1870년 출간된 이후 애송되었는데,. 한글 번역자는 베어드 부인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찬송가 가사를 곡조에 맞게 번역하여 부르기 쉽게 했다. 언더우드 번역과 비교해 보면 그 유려함을 알 수 있다. 베어드 부인의 번역은 지금도 그대로 부를 정도로 우수한 번역이었다.

악보판 찬숑가의 제작비는 피터즈(Alexander A. Pieters 피득) 선교사의 개인 기부로 전액 충당했다. 피터즈의 헌신으로 곡됴 찬숑가4판까지 총 9만 권을 출판했다. 4판 뒷면 저작권 표지에 보면 지은이: 조선 평안북도 선천군 피득 목사, 발행인: 영국인 서울 종로 반우거[Gerald W. Bonwick]’로 인쇄했다. 찬숑가는 판을 거듭하며 최종적으로 1942년 판에는 317장으로 증보됐고, 감리교의 신정 찬송가(1931)와 장로교의 신편 찬송가(1935)가 나오기까지 20년간 두 교단이 함께 사용했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하나의 찬송가를 전통은 통일 찬송가’(1983)라는 한 권의 찬송가를 사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1931신정 찬송가는 서문에서 1908년 당시 형편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905년에 장로파와 감리파의 합동 운동이 시작됭, 그 결과의 하나로 찬미 책을 합하게 되었나니, 배위량 부인과 민로아 목사와 방거 씨가 위원으로 피선되어 1906년에 제2차로 연합공으,회가 모인 때에 이 책이 되어 가는 형편을 보고하였는데, 그 내용으로 말하면 이 새로 될 책은 이미 있던 찬미를 토대로 하되, 할 수 있는 대로 개정할 것은 개정하기로 하고, 또 새로 넣을 찬미도 그와 마찬가지 기회를 주도록 하고, 아래와 같은 표준을 세웠으니, 즉 말은 존경어로 구조가 명확하며 의사가 정당하고 교리에 적절한 것만 쓰기로 하니라. 이 새 찬송가가 횡빈인쇄소의 화재로 인하여 좀 늦게 나오게 되었으나, 1908년에 6만 부가 나와게 되었고 [중략] 그 이듬해에 5만 부를 더 박게 되었느니라.

책 부록으로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을 넣었다. 1910년까지 225,000권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