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문서, 성서, 번역

한글 구약 번역의 효시는 피터즈의 <시편촬요>가 아니다

한글 구약 번역의 효시는 피터즈(A. A. Pieters 피득)의 『시편촬요』(1898)가 아니다. 피터즈 이전에 다른 선교사들이 먼저 구약을 번역했으며, 그 일부를 소책자 형태로 간행하거나 신문에 연재, 출판했다.

첫째, 1892~1893년 구약의 여러 책의 본문을 발췌하고 한글 번역문을 실은 소책자인 『구약공부』를 배재학당의 교장 존스(George Heber Jones, 1867~1919) 목사가 번역하여 출판했다. 『시편촬요』보다 5~6년 앞서 책으로 출판되었다. (사진 1)

둘째, 1894년 청일전쟁으로 선교 사역이 중단되었을 때 언더우드는 시편을 번역했다. 이 번역은 출간되지 않았지만, 1906년 그의 번역으로 나온 『시편』으로 연결된다.

셋째, 1894~95년 스크랜턴이 북감리교회 주일 성경공부를 위해 신약에서 1,080절을, 구약에서 창세기 열 한 장, 출애굽기 여섯 장, 시편 네 편 등을 번역했다. 이 번역문은 아마도 등사본으로 인쇄하여 감리교회 주일 공과로 사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등사본 초역 단계의 구약 번역은 스크랜턴이 시작했다.

넷째, 1897년 2월 초에 켄뮤어 총무는 “번역위원 한 명에게 창세기 1장 번역을 맡겼는데 아직 5절에 머물러 있다.”라고 보고했다. 이 번역위원이 누구인지 밝혀주는 자료는 없지만, 정황상 아펜젤러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창세기 1장에 그친 개인 번역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

다섯째, 1897년 건양(建陽) 2년(1897) 2월 2일 창간된 한국 교회의 첫 신문(주간지)인 「죠션크리스도인회보」에 주일학교 례ᄇᆡ일 공과공부를 위한 사무엘상하 번역 본문이 실리기 시작했다. 아펜젤러(H. G. Appenzeller) 역이다. (사진 2)

이 가운데 첫번째와 다섯번째는 출판된 본문이다. 발췌본이었다. 따라서 존스와 아펜젤러가 피터즈(피득)보다 4년에서 1년 전에 구약 번역문을 개인역으로 출간했다.

--관련 논문, 옥성득, "아펜젤러의 성경 번역, 1885-1902--서울 번역, 비평 본문 도입, 구약 번역의 선구자," <성경원문연구> 55 (2024.10): 30-49.



사진은 삼상 10장의 존스역(1893)과 아펜젤러역(1897)

존스역, 『구약공부』 하 (1893)
"“례ᄇᆡ일 공과” < 죠션크리스도인회보>, 189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