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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저서

1909 최병헌, <성산명경>, 서문

한국 개신교 최초의 비교종교론이라고 할 수 있는 최병헌(崔炳憲, 1858~1927)의 신소설 <聖山明鏡>은 1909년 초판과 1911년 수정판이 있다. 국내에는 1911년판만 알려져 있었으나, 오래 전에 필자가 하바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서 1909년 초판을 발견하여, 수정판에는 없는 그 서문을 소개한 바 있다. 현재 국내에는 초판본이 발견되었고, 초판본 표지 그림과 수정판 표지 그림이 약간 다른 것(낚시꾼의 낚시대가 90도로 직각인 것이 초판, 줄이 높이 들어져 있는 것이 수정판)까지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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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가 그 표지 그림을 그린 화백이 조선 왕실 최후의 궁중화가인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인 것도 밝혔다. 

안중식(安中植, 1861년 8월 28일 - 1919년 9월 10일)은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화가로, 본관은 순흥, 호는 심전(心田)이다. 도화서 출신인 그는 양천군수와 통진군수를 지냈으며, 1881년에 조석진과 함께 관비생으로 중국 유학을 다녔다. 이후 1911년에 조선서화미술회 회원이 되었으며, 1918년에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지냈다. 그는 산수와 인물, 화조를 잘 그렸으며, 시와 서예에도 능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 《산수도》와 《군작도》, 《백악춘효도》, 《도원문진도》, 《성재수간도》, 《영광풍경》 등이 있다.

최후의 궁중화가, 장승업의 수제자, 1902년 고종 황제 어진 화가, 1909년 조선 최고의 화가, 1915년 경복궁 훼손을 보고 "백악춘효(白岳春曉)" 두 점을 그린 화가이다. 3.1운동에 참여하여 감옥 생활 후, 사망하셨다. (참고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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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서문을 스캔해서 공개한다. 한국교회가 생산한 첫 신학서의 하나로 타종교 신학인 성취론을 잘 보여주는 책이므로, 서문을 쓴 존스(George Heber Jones, 1867-1919) 선교사는 한국의 <천로역정>으로 극찬했다. 곧 어떤 지역에 기독교가 들어가서 본토인이 Christian allegory로 본토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와 우화를 통해 전통 종교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성취하는 탁월한 기독교의 우월성과 최종성을 설득하는 문학을 만들 때, 그 민족의 완전한 복음화가 가능한데, 바로 최병헌의  <성산명경>이 그런 책이라고 평가했다. (서문 전문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존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최연소 약관 20세에 서울에 파송된 북감리회 선교사였다. 그는 자신보다 열 살 위인 양반 학자 최병헌을 통해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종교를 배우고, 최병헌은 존스를 통해 기독교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두 사람은 짝이 되어 한문 개신교 서적인 <天道遡原> 등을 함께 공부하면서 기독교와 유교,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를 당시 포용적인 복음주의 신학인 성취론을 수용하고, 양반 학자 선교에 나섰다. 인천과 강화도를 선교하던 존스가 초시 김상임을 전도하고 강화도 선교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최병헌의 도움이 컸다. 존스는 최병헌과 함께 한국학을 공부하여 통신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최병헌이 이 책을 쓸 무렵 그는 뉴욕 북감리회 선교본부에 발탁되어 문서와 교육을 담당하는 총무가 되었다. 

존스와 최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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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 <한국기독교형성사>는 성취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계획은 최병헌과 길선주의 타종교 신학이 들어간 마지막 장을 추가하려고 했으나, 이미 책이 두꺼워 그만 두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bhjZF2CVRg)

최병헌의 <성산명경>은 현대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으므로 관심 있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는 일독을 권한다. 1910년이 되기 전, 복음을 접한 지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최병헌은 이런 훌륭한 우화소설을 만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거룩한 산(성산)에서 맑은 거울(명경)을 보듯이 유불선 삼교를 거친 후 기독교를 통해 진리를 발견해 나가는 순례의 길을 보여준다. 자신과 같은 유학자가 기독교인이 되는 과정에서 유불선의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기독교로 더 나은 진리를 깨달아갔는지를 대화체로 잘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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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한국 교회의 교인 중에는 이처럼 유교, 불교, 도교를 잘 이해하고, 그 전이해와 바탕 위에서 기독교를 수용한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2세대, 3세대로 오면서 유불선에 대한 이해 없이, 기독교만 진리라는 결론 부분만 수용한 자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인의 영성을 2천 년 가까이 유지하고 계발해 준 유불선의 가치를 도매금으로 무시하고, 오직 성경만을 외치며, 십자군 정신으로 유불선과 무교를 우상숭배의 종교, 조상숭배, 귀신숭배의 종교로 낙인을 찍고 정복하고 파괴하는 것이 마치 복음서의 정신이요 기독교 신학인 것처럼 착각했다.

그러나 마태 5:17 주님은 기존 율법과 예언을 파괴하려 온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온전케(성취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 마친가지로 선교사들이나 기독교인은 현지 종교나 문화를 파괴하고 정복하는 대신, 기독교 복음과 접촉점을 찾아서 예의로 대화하면서 서서히 복음과 봉사로 설득하고 감화함으로써 더 나은 종교인 기독교를 수용하도록 한다. 배타적 근본주의가 아니라 온건한 포용적 복음주의가 초대 한국 교회의 타종교 신학이었다. 그 전통은 일제 식민지가 심화되고, 신사참배, 대동아전쟁,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잃어버렸다. 

지난 30년 간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은 불상이나, 장승이나,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것이 복음적인 전도 방법인 줄 알았다. 혹시 지금도 그런 것이 초대 한국교회 전통이요 선교사들이 전해준 복음이라고 착각하는 분이 있으면, <한국기독교형성사>를 정독해 주기 바란다. 그런 근본주의는 전통에서 빗나간 전 세계에서 1%도 안 되는 기독교인들의 완고한 신학일 뿐이다. 길선주를 비롯해 우리 한국 교회 초대 목사님들의 신앙은 그렇지 않았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