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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저서

<성산명경> 표지 작가는 안중식, 1909년

<성산명경>(1909) 표지 작가는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다. 나는 성산명경의 표지를 <한국기독교형성사> 표지로 사용했다.

아래 그가 그린 “桃園問津圖”(1913)를 보면 책 표지 그림과 화풍이 비슷하다. 책 표지 그림은 최병헌의 <聖山明鏡> (1909)의 표지 그림으로 1911년판에는 일부를 바꾼 새 그림으로 다시 사용했다. 도원문진도와 성산명경도를 비교해 보면 소나무 그림이나 배 모양, 화풍 등으로 볼 때 안중식의 그림이 확실하다. 그 동안 성산명경 표지를 누가 그렸는지 몰랐는데, 오늘 심전의 작품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성산명경 표지(1909)와 도원문진도(1913)

1909년 성산명경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을 그렸다면, 1913년 도원문진도에서도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도인의 모습을 그렸다.

안중식(安中植, 1861년 8월 28일 - 1919년 9월 10일)은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화가로, 본관은 순흥, 호는 심전(心田)이다. 도화서 출신인 그는 양천군수와 통진군수를 지냈으며, 1881년에 조석진과 함께 관비생으로 중국 유학을 다녔다. 이후 1911년에 조선서화미술회 회원이 되었으며, 1918년에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지냈다. 그는 산수와 인물, 화조를 잘 그렸으며, 시와 서예에도 능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 《산수도》와 《군작도》, 《백악춘효도》, 《도원문진도》, 《성재수간도》, 《영광풍경》 등이 있다.

최후의 궁중화가, 장승업의 수제자, 1902년 고종 황제 어진을 그린 화가, 1909년 당시 조선 최고의 화가, 1915년 경복궁 훼손을 보고 "백악춘효(白岳春曉)" 두 점을 그린 화가이다. 3.1운동에 참여하여 감옥 생활 후, 사망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그의 호는 공립(公立), 심전(心田), 자당(資堂), 심전(心筌), 경부(耕夫), 경묵도인(耕墨道人), 용인(庸人), 경묵용자(耕墨傭者), 불이자(不二子), 불부옹(不不翁) 등이다. 그러나 1909년과 1911년 판 성산명경에 사용한 호는 이들과 다르다. 

참고 기사: http://sbook.allabout.co.kr/magazine/museum/sm-2/pt-post/nd-17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신문 572

국립중앙 박물관 박물관 신문 웹진

sbook.allabout.co.kr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204108

 

조선 최후의 궁중화가가 그린 경복궁은?

최근 몇 년 사이 '근대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제법 열리고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근대'라는 말이 들어가는 전시회는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근대'라는 시기 자체가 관람객들에게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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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에는 낚시배가 자주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