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에 가면]
1903년 원산 부흥의 주역 로버트 하디 목사의 두 자녀 무덤이 있다.
1893년 8월 9일에 태어나 하루 만에 죽은 마리(Marie).
강원도와 원산에서 사역할 때 열매가 없어 실망하고
기도하던 그에게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
마음판에 새겼다. "메네 메네 데겔 ... "
데겔, 하나님의 저울에 내 삶과
내 믿음의 무게를 재니
함량이 모자랐다.
그 길로 회개한 하디는
1903년 원산 부흥을 일으켰다.
그러나 부흥의 물결이 지나간 1909년 2월
귀여운 다섯 살 딸 조이(Joy)가 죽었다.
하늘은 참으로 무심하시다.
신비를 헤아릴 수 없다.
바람 부는 양화진 언덕에
추운 겨울이라 꽃 한 송이 없이
맨 땅에 아이를 묻는 손이 떨렸다.
작은 관에 눈물과 함께 흙을 뿌렸다.
두 아이를 안고 마음 속에 고이 묻었다.
평생 그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고난의 골짜기, 이 나그네 땅에서
막벨라 동굴을 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옥성득, <한반도 대부흥> (홍성사, 2009), pp. 146-147에서 요약
출간 10주년 해에 부흥 대신, 무너지는 한국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의 신비를 찾아가면서 (2019.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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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디의 연보를 다시 본다.
1912년까지 네 명의 자녀를 잃었다. 위에서 말한 두 딸과, 두 아들.
1888년 첫 아들 Arthur는 태어난 후 8개월 넘기고 8월 31일 사망했다. 아들을 묻고 한국 선교를 준비했다.
이어서 한국에서 태어난 두 딸 에바와 애니는 잘 자랐으나,
1893년 셋째 딸 Marie는 하루 만에 사망했다.
이어서 태어난 네 아이 중
1903년 막내딸 Joy가 다섯 살에 죽었고,
1912년 매사추세츠 노스필드에서 아들 Robert가 죽었다.
1949년 6월 30일 하디도 이 땅을 떠났다. 1865년 6월 11일 생이니 향년 8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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