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라면 10.27 집회에 참석할까?: 1910년 백만명구령운동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번 10월 27일 집회보다 더 크고 더 전국적이고 더 장기적인 집회 운동인 백만명구령운동(Million Souls Movement)이 1909~1910년에 일어났다. 국운이 기울고 위기가 닥치자 20만 명의 신도가 일어나 1년 안에 100만 명을 구원하여 기독교 국가를 만들자는 야심찬 거국적 운동을 진행했다. 구호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고, 포스터에 신문 광도도 하고, 국내외 유명 부흥 강사를 동원하여 대규모 집회도 하고, 전국 각지에서 70만 부의 마가복음을 배포하며 전도 캠페인을 했다. 기도와 성경과 개인 전도로 이루어진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운동이었기에 반대하는 이도 적었다. 서울에서는 언더우드(H. G. Underwood) 지도 아래 1910년 10월 한 달간 대규모 전도 집회를 집중적으로 개최했다.
1910년 10월 서울의 모든 선교사와 목회자가 연합하여 대규모 전도대회를 열고 유명 강사들이 설교했다. 그 전에 여름 동안 권서와 전도부인들이 서울의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전도지를 주고 마가복음을 전했다. 모든 극장과 오락장의 저녁 시간을 빌려 전도했다. 4,000명을 수용하는 천막 두 개를 설치하고 대중 전도 집회를 연속적으로 개최했다. 한 달 동안 ‘사탄’의 세력을 타격했다. 포스트와 전단을 붙이고 뿌렸다. 6개 일간신문에 매일 전도 광고를 실었다. 한달 동안 서울의 모든 가정을 두 번 더 방문하고 전도했다. 다른 도시에서는 11월에 서울을 따라 비슷한 방법으로 전도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 대구의 경우 10일간 사경회를 통해 500명이 결단했으나 집회 후에 교회에 나온 사람은 10명에 불과했다. 북장로회 전체로 보면 1910년 9월 보고에서 1년간 세례교인은 25,057명에서 32,509명으로 30%가 성장했으나, 학습교인은 23,885명에서 26,981명으로 약간 증가했고, 1911년 9월에는 오히려 25,948명으로 감소했다. 전체 교인은 1909년 96,443명에서 1910년 110,362명으로 약간 증가했으나, 1911년 108,470명으로 감소했다. 사상 첫 감소였다. 한국 개신교 전체 절반을 차지하던 북장로회의 통계이다. 다른 선교회/교단은 성적이 더 나빴다. 100만 명이 아닌 10만 명도 구원하지 못했다. 인구 증가를 고려하면 교세는 인구의 자연 증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숫자 면이나 사회적 인식 측면에서 백만명구령운동은 실패했다.
기도하고 전도하고 성경을 전하자는데 어떤 기독교인이 반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라가 식민지가 되는데, 교회를 확장하자는 십자군 운동에 대해서 국민/시민들은 외면했다. 뜻있는 애국지사 교인들은 조용하지만 비판적 태도로 임했다. 교회의 대세가 전도 캠패인이요, 100만, 100만이라는 구호에 그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그들 일부는 한국을 떠나 만주로 가거나 미국으로 떠났다.
114년 후 다시 10월에 서울에서 대규모 개신교 집회가 열린다. 그때와 성격은 다르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개신교인들이 대규모 집회를 통해서 “나라를 바꾸자”는 구호를 내세우고 교회의 뜻을 관철하려는 자세는 동일하다. 내 뜻이 곧 주님의 뜻은 아니다. 모임 주도자들은 이 집회가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정당화한다. 114년 전의 집회와 운동에 비해 초라하고 명분도 약하고 인위적이지만, 대단한 모임으로 자찬한다. 인위적 모임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칭하는 제2계명을 범한다. 1938년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여 십계명의 1계명을 범하고 청년 교회의 순결과 거룩성을 훼손했다면, 2024년 10.27 집회는 늙어버린 노인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부르는 치매 현상을 보이면서 교회의 지성과 영성을 훼손하고 있다. 신사참배 결의 총회와 다를 바 없는 모임이 10.27 집회다.
다윗은 늙었을 때 인구조사를 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의 수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마치 하나님이 지시한 것처럼 표현한다. 사무엘하 24장 1절. “주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셨다. ‘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여라.’” 하나님이 인구조사를 지시하거나 허락한 것이 아니라,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려고 다윗을 부추기셨다. 지금도 동일하다. 한국교회 보수 교단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세력과 힘을 믿고 밀어붙이려고 하자, “그래, 어디 한번 해 보거라.”라고 진노 중에 부추기신다.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망령되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이번 집회 표어 말씀이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삼상 11:14)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주변 국가의 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왕으로 삼고 왕국을 세웠다. 그것이 당시 “나라를 새롭게 하자”라고 했던 본의였다. 이제 한국교회 일부 교단과 목사들도 교세가 약해지고 교회의 사회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교회 힘으로 악법을 저지하자며 교회와 나라를 개악하려고 한다.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방법은 숫자나 규모나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페트( S. A. Moffett) 목사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전도와 교회 성장은 오로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붙잡은 말씀은 고린도전서 2장 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성경에 단 한 번 ‘데모’(나타나심)가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가 할 데모는 성령의 능력의 데모이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유한하고 바뀌고 오류가 뒤따른다. 언더우드처럼 앞 일을 예측하지 못한다. 그런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하는 집회는 비복음적이다.
바로 스가랴 4장 6절--“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1907년 대부흥 때는 스가랴 4장 6절을 붙잡았다. 비록 계획한 부흥 운동이었으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었기에 대부흥이 가능했다.
그러나 1910년 선교사들과 목사들과 교회가 주도한 백만명구령운동은 실패했다. 그 운동을 주도했던 언더우드가 오늘 살아 있다면 무슨 경험담을 전해 줄까? “한국 목사들이여, 정신 차리시오. 지금 당신들이 정말 나라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한다면, 대규모 집회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들을 돌아보고, 지난 20년간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 앞에 저지른 저지른 죄악을 하나님 앞과 사회 앞에서 회개하고, 교회 개혁에 매진하시오. 한국 사회에 문제가 얼마나 많고 중요한 의제가 많은데 과연 차별금지법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교회가 망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골방에서 기도하시오. 대규모 집회 후에는 교회 감소가 올 것이니 대비하시오.”라고 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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