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폐허 속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에서는 예배가 중단되지 않았다. 예배당이 서 있던 자리에 가마니를 깔고 혹은 흙 바닥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했다.
Resilence. 복원력. 오래 참고 견디는 한국 교회의 회복력은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그 피 속에 내면화 되었다. 다가오는 고난과 절망의 시기를 지나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화려한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 때문이 아니라
저 흙 바닥에서 드린 예배 때문에 아직도 교회가 살아 있다.
로마서 8:37
(비록 남북은 분단되었으나)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분단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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