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피해자의 심리를 극복할 때
한국에는 희생양 심리가 넘친다.
I am who “more sinned against than sinning."
이 말은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3막 2장에 나오는 말로
I am “less guilty than those who have injured one.”의 뜻이다.
곧 비록 나는 잘못을 저질렀으나 더 큰 죄를 범한 자의 희생자라는 뜻이다.
1. 리어왕과 박대통령의 심리
"나는 지은 죄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자로 오해되고 있다."
리어왕은 자기 집착적인 동정을 토로한다. 나는 운명에 맞선 잔인한 상황의 희생자이다. 무자비한 신의 손에 고통을 받으며 불의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자들의 악의적인 행동으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인내의 모범이 될 것이다. 누가 더 많은 죄를 범했는지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나는 적은 죄를 저지른 무력한 희생자일 뿐이다. 아니 나는 사심 없이 국가를 위해서 일했을 따름이다. 자기 도취(나르시즘)와 자기 동정에 빠진 지도자의 심리다.
2. 일부 사람들의 심리
"나는 정치와 제도의 희생자이다."
영화를 보면 법적인 제도가 실패할 때 자신의 손으로 법을 집행하는 남자를 보게 된다. 어떤 악당이 그의 가족을 죽였지만 경찰과 법원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지 못한다. 그 남자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작정하고, 악당과 악당 주변의 모든 사람을 차례로 죽인다. 그는 그것이 범죄인줄 알지만, 더 큰 잘못이 그에게 행하여 졌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일을 할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 그는 “나는 제도의 희생자”라고 말한다. 자신의 죄보다 누군가의 죄가 더 크다고 말하는 이유는 죄책감을 덜하기 위한 심리 장치이다.
3. 동학이 발생하자 선교사들은 이 문구를 사용했다.
“more sinned against than sinning"
동학에 참여한 자들을 후자의 심리로 해석했다. 나아가 "죄를 지은 자녀들에 비해 더 큰 죄를 짓는 부모(죄를 짓는 국민들에 비해 더 큰 죄를 짓는 정치가들)"의 뜻으로 재해석한 듯하다. 곧 1894~95년 동학운동이 일어났을 때 마포삼열과 개신교 선교사들은 동학의 봉기 원인--관리들의 불의와 부패에 대한 반항--은 정당하다고 보고 그들을 동정했으나, 폭력과 혁명의 방법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그 때 사용한 문구가 위의 문구였다. 따라서 1894년 말부터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제2차 동학 봉기가 일어났을 때, 개신교인과 선교사들은 동학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동학군의 일부가 개신교인이 되었으며, 동학군이 사용하던 건물을 예배당으로 바꾼 경우도 있었다. 방기창 목사와 김구 선생이 동학 접주 출신으로 교회 지도자가 된 대표적인 분들이다.
4. 더 큰 죄를 짓는 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 때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42) 무엇이 더 重하냐? 둘 다를 취할 수 없는 비상 시점에서는 전자를 버릴 수 있다.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일 법, 십일조 법보다 더 중한 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공의와 사랑의 법이다.
5. 희생자 심리보다는 건전한 시민 의식, 민주 정의 의식이 필요한 때이다.
평화 무저항의 방법으로 정의를 요구하는 편에 설 때이다. 120년 전 개신교회는 동학 전쟁이 일어난 이유였던 사회적 모순과 정치권의 타락을 함께 비판했다. 그러나 폭력의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제 교회는 최소한 그때와 마찬가지로 정의와 비판 의식과 함께 평화로운 방법으로 외칠 때가 아닌가? 공적인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지 못해도 한 줄기 맑은 시냇물처럼은 흐르게 할 때가 아닌가. 우리는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