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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10s

1919 상하이 대한민국 임정 "대한적십자회" 조직

1919년 7월 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를 조직하고, 이를 8월 29일 공표했다. 조직하기 전에 발표한 성명서 4장 중 첫 장이다. 이때는 적십자사로 했으나 조직할 때는 적십자회가 되었다.

"한국 적십자사 모의문"

아름답다 자선의 사업이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요, 사람마다 요구하는 바나, 자선 중에도 천재와 인복을 불분하고 능히 사와 생의 변국을 불구하여, 아와 인의 격벽을 파괴하고, 제세의 실천을 양하여 박애의 활기를 수하여 좌면우고하여 무량한 생령을 기사회생하는 것은  자홉다. 오인의 면려하는 적십자사가 아닌가. ...

임원 명단이다. 초대 회장은 이희경이었다. 부회장 안정근, 이사장 서병호, 서기 김태연, 재무부장 고일청, 감사 옥성빈, 감사 김순애 등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1919년 7월 1일 발행한 삼일운동 참상에 대한 사진집--사진 다수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의사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가 촬영하여 비밀스럽게 상하이 임정에 전달했다--에 실린 임원 명단과 창립 회원 명단이다. 미국과 유럽에 발송했기 때문에 영어로 작성했다. 

1919년 삼일운동에 대한 일제의 만행과 사상자 보고는 그 해 미국 신문에 선교사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적십자사 일본지부가 공정하게 보고했다면, 사상자나 피해 가옥 등이 제대로 알려졌을 것이다. 미국 적십자사가 한국인을 도우려고 했을 때 일본 정부는 거절했다. 

임정 대한적십자회는 사진집을 발간해 삼일운동의 진상을 알렸다.

세브란스병원 외과에서 치료를 받는 팔이 짤린 환자를 돌보는 간호부 (촬영자는 스코필드가 분명하다)

아래 사진처럼 1919년 말 제1회 대한적십자회 간호원을 배출했다. 이들은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인 환자들을 돌보았다.

1920년에 중국 상하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호놀룰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멕시코 미란다, 한국 서울 등 6개 지회(division)가 비밀스럽게 조직, 설치되었다. 

대한적십자회 간호부 

또한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캘리포니아 Dinuba에서 1920년 삼일절 기념식에 적십자대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의 여러 지역에 1920년 2월까지 여러 지부/적십자대도 함께 조직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10-11월에 발생한 간도 대학살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적십자회"의 이름으로 피해 상황을 보도했다. AP를 이를 인용하면서 전 세계에 한인의 피해와 일본의 만행을 알릴 수 있었다.

북간도 등에서 한 달 동안 25개 교회가 불탄 사실에서 보듯이, 간도의 한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민족 독립운동을 했고, 일제는 철저히 교회를 불태우며 보복했다.

 

1922년 이후 대한적십자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