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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10s

합방과 병합의 차이

한일합방, 한일병합 등으로 혼용하지만 뜻은 다르다. 병합론자들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후에 합방이란 말로 미화했다.

The Japanese one-sided way of annexation of Korea (heigō 併合), rather than a more equal “union” (gappō 合邦), happened in the name of Pan-Asianism in 1910.

See Tarui Tōkichi's 樽井藤吉 (1850–1922) treatise <大東合邦論> (Daitō Gappō-ron, Union of the Great East) in 1893.
 
Tarui Tokichi argued that Japan and Korea could form a nation called "Daito" on an equal footing between two nations and maintain independence from each other. His idea was to form an alliance with the Qing dynasty, defend Asia from the invasion of Western powers, and at the same time achieve the reconstruction of Asia.

물론 타루이의 합방론은 정한론이 발전, 위장한 것으로 한국 침략을 지지하는 합방론이었다. 정한론이나 병한론과 달리 합방론은 일본을 맹주로 하는 아시아 연합체를 주장한 점에서 약간 달랐다. 그러나 약소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합방(을 통해 식민지로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은 양의 탈을 쓴 늑대에 불과하다. 이 책이 나온 이듬 해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10년 후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그의 합방론은 관념으로만 남는다. 병탄을 하고서도 일본 지도자들은 한국을 합방했다고 기념했다. 한국을 잡아 먹고도 일체가 되었다고 기념탑을 세웠다. ‘합방론’ 다음은 대륙 침략론이었고, 결국 1937년 제2차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타루이의 필적과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