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장로교인

서상륜의 경력과 장진국

아직 풀지 못한 30년 전 숙제

서상륜 선생의 행적에 대한 자료는 선생이 쓴 회고문 자체에 오류가 많고, 여러 1차 자료들도 서로 다르며, 해방 이후에 쓴 2차 자료는 픽션이 더해져서 더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지금도 위키백과의 서술은 오류 투성이이다. 그래도 대충 그의 생애를 알려면 일단 위키를 읽어보자.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83%81%EB%A5%9C


서상륜이 직접 쓴 "서선생 상륜의 경력," <그리스도신문>,1901년 9월 9일자에 자신의 기독교 개종사건을 회고하고 있다.


내가 이십칠년 전에 대청국 봉천성 우장당방 영구라 하는 항구의 여간 사소한 장사를 갔다가 뜻밖에 신병을 나서 거의 죽을 지경에 당하였나이다. 그때에 감사하신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있어 전도하시는 대영국 목사 마근태(매킨타이어)씨에게 감동하사 나를 객점에서 자기 집으로 옮기고 영국의사를 청하여 매일 이삼차씩 진병하며 복약하매 거의 두 주일 동안에 회생하였나이다. 그때에 나는 알지 못하였으나, 감사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때부터 나를 부르셨나이다. 그때 처음 마근태 목사에게 그리스도 예수씨 복음을 전해 듣고 성경책도 얻어 보았나이다.

서상륜이 사망한 직후에 나온 "고 서상륜 씨 약력," <기독신보>, 1926년 1월 20일자를 보자.


이 글에는 연도에 3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 등 많은 오류가 있다. 또한 그를 장로로 칭하지 않는다.

나의 학부 논문

나는 1988년 2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면서 "예수셩교본과 한국 개신교, 1876-1894"를 졸업 논문으로 제출했다. 200자 원고지로 400장 정도를 만년필로 채웠다. 존 로스 목사와 존 매킨타이어 목사의 한국 신약전서 번역, 그 번역에 참여한 첫 한국인 개종자들돠 번역조사들, 그 성경을 들고 서간도 한인촌과 의주-평양-서울-소래에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매서인(권서) 백홍준, 김청송, 류춘천(?), 서상륜 등에 대한 연구였다. 그 논문은 나중에 다음 4개 글에 들어갔다.


1) 이만열, "서상륜의 (徐相崙) 행적에 관한 몇 가지 문제," <한국기독교사연구회소식>, (1988)

2) 이만열, “1880년대 서간도 한인촌 기독교공동체 연구” <숭실사학> (1990)

.............이 두 논문은 이만열, <한국기독교와 민족 의식> ,서울: 지식산업사, 1991에 들어갔다.

3) 옥성득 이만열, <대한성서공회사 제1권> (대한성서공회, 2003)

4) 옥성득, "첫 전도인과 첫 권서 김청송과 서상륜," <다시 쓰는 초대한국교회사> (새물결, 2016)

서상륜의 행적에 대한 첫 논문은 상세하게 기존 논문과 서술들을 모두 검토하고 이용 가능한 1차 자료를 모두 동원하여 기존 서술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는지 밝힌 글이었다. 대표적으로 서상륜이 장로가 아닌 점, 그가 세례 받은 때가 1882년 봄이며, 1882년 10월에 권서로 출발하여 별정소에서 책이 압수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했으며, 1883년 말 - 1884년에 서울에서 전도한 후, 소래로 이주하여 동생 경조가 개종하고 함께 1885년부터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정리했다.

1988년 내가 그린 서상륜 행적 관련 도표, 1번 논문에 들어갔다.

이러한 논문이 나온 지 3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2차 자료들이 오류를 반복함으로써,위키백과 등에 아직도 과거 오류가 남아 있다.

신비의 인물 장진국

그러나 "고 서상륜 씨 약력," <기독신보>, 1926년 1월 20일자에 나오는 백홍준과 김청송(김송청이 아니다)은 제2수세자, 제5수세자로 정리했으나, 장진국(張珍國)은 어느 자료에도 등장하지 않는 신비의 인물이다. 1928년에 발행된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7쪽에 나오는 매킨타이어의 첫 세례신자 김진기, 이응찬, 서상륜, 이성하, 백홍준 중에서 김진기를 잘못 지칭한 것일까? 장진국이 누구인지 밝히는 숙제를 아직도 못 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