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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교수의 글 /일반 단상, 광고

연세신학 동문들의 선언문을 읽고


1. 첫 줄에 '비선실세' '사이비교주'가 과연 실재하는가? 과연 이만희가 윤석열 후보의 비선실세인가? 이만희가 윤 캠프에서 어떤 영향력이 있으며, 어떤 인물을 심었고, 정책 형성에 직접 영향을 주었는가? 그런 충분하고 확고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지 않다면 첫줄은 지워야 한다.
 
 
그가 윤 캠프의 비선실세라는 증거가 있는가? 만일 윤이 당선되면 향후 국정운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있다면 떳떳하게 이름을 밝히는 것이 바른 자세이다.
 
 
신천지 쪽에서 자신들을 지키고 그 단체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 접근했을 수는 있겠지만 비선실세라고 할 수 있을까?
 
 
2. 이 성명서는 대내용(선한 양심을 가진 신실한 기독교인 대상)인가 대외용(일반인 대상--민주 시민)인가? 만일 대선 후보 선택을 돕기 위한 후자용이라면 사이비나 이단이라는 용어는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기독교인 대상이라도 동일하다. 신흥종교라고 해서 모두 사이비 이단으로 몰 수 없다. 만일 후보 주변에 몰몬교 신자나 퀘이커 교도나 일본 천리교 신자가 있다면, 동일한 용어인 사이비나 이단을 사용하면서 배제하고 비판할 것인가?
기독교인/신학자/목회자들이 정치적 성명서를 발표할 때에는 비기독교인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일반 종교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독교에서 보면 사이비나 이단이라도 중립적 용어인 신흥종교(new religious movement, new religion)라고 해야 한다.
 
사회적 물의를 빚어서 반사회적 단체로 인정된 단체라면 '사교집단'(cult)이라고 할 수 있다.
 
3. 여러 종교를 혼합한 신흥종교인을 주술가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역 성경 이후 공동번역, 새번역까지 '주술가'라는 용어는 새번역 다니엘서 2장에만 등장하고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는다. 즉 바빌론 제국 느부갓네살 왕궁에 있던 특정 종교인을 지칭한다. 따라서 신학자/목회자들이 이 말을 사용할 경우에는 수 천 년 전 특정 종교직업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게 좋다. (신명기에는 복술가, 술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지금이 바빌론 제국 시대인가?
 
만일 이 선언문이 여자 무당/만신이나 남자 역술인을 주술가라고 했다면, 그 또한 부정확한 용어이다. 또한 공식적 성명서에서 타종교인을 '심히 거짓되고 악한 영들'에 사로잡힌 자로 표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4. 다만 성명서에서는 그들이 공적 영역인 정치에서 비선 실세가 되어 국정에 관여하는 것을 우려하는데,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므로, 그것은 정당하다고 본다. (다종교사회이므로 선언문은 다종교 상황을 고려하여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연세 신학과 동문들은 기독교 목사들이 대통령을 독대하거나, 청와대에 모여 예배하거나, 대형 조찬기도회를 열어 대통령을 무릎꿇고 기도하게 하거나 정치에 영향을 주어온 것에 대해서 이런 성명서를 발표했는지 궁금하다.
 
5. 나는 이런 특정 후보를 반대하는 부정적인 선언문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밝히고 지지를 호소하는 긍정적인 성명서가 기독교 지성인들에게 더 어울리며 족하다고 생각한다. 네거티브만 있고 포지티브가 없는 성명서는 한쪽으로 치우친 성명서다.
 
빛을 밝히면 어둠은 물러간다. 연세대 신학과는 내 동생도 졸업한 곳이므로 애정이 있다. 빛의 자녀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2020년 3월 1일
연세신학을 걱정하는 한 책상물림
옥성득

 

추가) 내 글을 읽고 연대 신학과 동문들이 집단 지성으로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수정문에서도 여전히 주술가, 주술을 사용하는 문제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