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신학, 선교신학

초기 한국 감리회, 장로회 신학교육 자료

다음은 내가 편역한 Sources of Korean Christianity (Seoul: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4) 실린 초기 한국 개신교 신학교의 신학 교육에 관한 1차 자료들이다.

흔히 1896년 레이놀즈가 쓴 글에 나오는 정책을 비판하지만, 세계 여러 선교지에서 한국의 신학 교육 수준은 높았다. 당시 북미선교협의회가 정한 기준대로 선교사보다는 신학수준을 낮게 했는데, 이는 중국의 경험에서 일찍 해외 유학을 한 신학도들이 교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1902년 감리회 신학반이나 1910년 장로회 신학교나 당시에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한문 신학 서적을 이용하여 한국 상황에 맞는 목회자를 양성했다. 지금 수준으로 비판하면 곤란하고,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평가해야 한다.

1907년 평양신학교 교장 마페트 목사는 안식년 때 프린스턴신학교에 가서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칼뱅주의를 수용하고 이를 교육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1910년대가 되면 숭실대 출신이 신학교에 가므로, 1920년대에 그 수준을 한 단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