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이재근 교수가 한국기독교역사학회에서 발표한 "미국 남장로회 하퍼 선교사 가문의 한국 생활과 선교사역: 전형과 비전형"에 따르면, 하퍼 부부(조셉과 애니스)는 1919년 12월 18일 결혼 후 내한하여, 1921-22년 다음 표 2세대에 있는 두 아이를 낳는데, 1921년 5월 17일 아들 조셉 배런은 광주 제중원에서, 1922년 11월 22일 딸 마디아 메리 알렉산더는 군산 구암병원에서 출산했다. 목포에도 병원이 있었는데, 왜 첫째는 광주에서, 둘째는 군산에서 출산했을까?
2-3년 후 잘 자란 아이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는데, 첫째, 1921-22년에 목포 제중원에는 의사가 없었고, 1922년에는 광주에 의사가 있었지만 아마도 그가 산부인과 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의사가 없는 선교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을 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생명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1921년 광주 제중원에는 윌슨 의사가 있어서(1920년 10월 안식년 마치고 광주로 돌아옴) 첫 아들은 그곳에서 낳았지만, 1922년에는 군산 구암병원에 경험이 많은 패터슨 의사가 있었기에 그곳으로 갔는데, 아마도 목포에서 내륙에 있는 광주나 전주에 가는 것보다 선편으로 군산에 가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가 컸다고 본다. 왜나하면 윌슨 의사는 이미 7명의 아이를 잘 낳아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호부도 요인이 될 수 있었는데, 1920-22년 군산에는 래스롭과 해리슨 부인이 있었고, 광주에는 휴슨이 있어서,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호남 남장 의료선교사들은 이동이 심해서 병원에 의사나 간호부가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는데, 선교사들이 아프거나 출산해야 할 때 불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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