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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3.1운동 (1919)

1919년 3월 1일 총독부 시위 보고서

극비 대정 8년(1919) 3월 1일 총독부 경무국 고제5410호 "독립 운동에 관한 건 (제2보)"

1. 경성 

2월 28일 밤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조사 중에, 3월 1일 오후 5시 반에 서명자 33인 중 29인 체포. 

오후 2시 반 경 학생 3-4천 명이 종로에 모여 일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안문으로 가서 독립연설을 하고, 일부는 경성우편국 앞에서 만세 시위를 한 후 남대문역으로 가면서 만세 시위를 한 후, 역에서 프랑스영사관 쪽으로 행진했다.   대한문 군중은 미국영사관으로 가면서 만세를 불렀고, 3,000명 시위대는 총독부를 향하다가 본정에서 저지당했다. 형세가 위중하여 용산 사령부에 연락하여 보명 3개 중대와 기병 1개 중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2-5쪽)

남대문역에서 보성전문학교 교장 윤익선이 <조선독립신문>을 군중에게 배포하였기에 체포했다. (6쪽) 

7-10쪽 33인 명단과 현직명, 체포자 29인과 미체포자 4인


2. 지방

11쪽 경기도; 개성 한영서원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어 예의 주시 중.

12쪽 황해도: 옹진에서 선언서 배포 

12-14쪽 평안남도: 평양 오후 1시에 고종 봉도식 후 선언서 낭독하고 만세 시위. 1개 중대 충동하여 해산. 진남포에서 예수교회 130명이 만세 시위 

15-16쪽 평안북도: 선천에서 신성학교 학생 100명 선언서 배포하고 시위. 부상자 발생. [의주 시위는 미 보고]

17쪽 함경남도: 원산 예수교 목사 곽명리 선언서 배포하고, 100명 조선인이 시내에서 시위.

18쪽 발송자

19-21쪽 <조선독립신문> 내용 


33인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