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4년 가을 아펜젤러 자료를 번역하면서 한국교회사 공부를 시작했다. 1985년 1월 백낙준 총장님이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연대에서 열렸을 때, 나는 한 구석에서 거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경직 목사님이 바울의 말씀으로 인생의 경주와 면류관에 대해 설교했다. 한국교회사 학자 1세대가 사라졌다. 2세대 없이, 3세대 민경배 교수가 한국교회사를 호령하던 때였다.
나는 1985년 6월에 교보문고에서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연세대출판부, 1973년 초판을 구입했다. 1929년 영문판의 번역이었다. 구입 직후 책 뒤에 "1885년에 入國한 Appenzeller와 Underwood를 공부하면서 (1985. 6. 26. 교보문고에서)"라고 쓰고 한문으로 내 이름을 썼다. 아펜젤러 공부를 1차로 끝내고 <언더우드 전기> 한글 번역을 수정할 때였다. 그들이 입국한 후 100년, 내 나이와 백 살 차이 나는 두 선교사를 공부하면서 내 인생도 바뀌었다.
©옥성득의 한국기독교 역사
그해 6월 초에 같은 출판부에서 이만열 편역, <아펜젤러>가 출판되었다. 그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아펜젤러의 자료(일기와 편지와 보고서 등)를 번역했는데, 나의 첫 자료집 번역이었다. 번역비를 받았고, 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빌딩 야간 경비를 몇 년째 계속하고 있었으므로, 약간의 돈이 생겼던 모양이다. 새로 지은 교보문고 멋진 서가에 가서 책을 감싼 두툼한 케이스 채 이 책을 뽑았다. 거금 6,600원(다행히 오래된 책이라 정가가 그대로여서 저렴했다)을 주었지만, 32번(?) 버스를 타고 이 책을 안고 숙직하는 남영동의 한통 빌딩으로 돌아올 때 그 기분은 정말 좋았다.
내가 한국교회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를 준 아펜젤러 자료를 번역할 때는 그 책이 교수님 연구실에 있었지만, 이제 내가 번 돈으로 한국교회사 책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첫 책이 이 책이다.
책 구입 후 30년 공부를 하고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2016)에서 하늘 같은 첫 한국교회사 학자를 비판할 수 있었다.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20년 전에 비판했어야 했는데, 용기도 실력도 부족했다.
선배를 비판하라. 외국 학자들을 비판하라. 학자는 비판할 때 학자이다. 비판 없는 신학은 죽은 교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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