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교사가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낸 정기 선교 편지이다. 누가 보낸 글인지 찾으면 올리겠다.
초록색 박스 안에 현재 조선장로교회 안에서 진행된 각 노회별 결정과 궁성요배(천황숭배), 신민 서사 제창, 일장기 경례, 신사참배 관련 실천 양상이다. 일단 동방요배는 살아 있는 천황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거의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이 동의하고 실천했다. 신민서사 암송이나 일장기 경례도 수용했다. 그러나 기실 엄격한 잣대로 보면 황제 숭배는 로마 시대나 1930년대 말이나 현현신에 대한 숭배(예배)였기에 신사에 가서 절하는 것과 별로 다름이 없었다.
기미가요를 부르고
군주의 치세는 천대부터 팔천대까지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황국신민 맹세를 했다.
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다. 충성으로서 군국(君國)에 보답하련다.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협력(信愛協力)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련다.
신사참배는 단독으로 있는 게 아니라, 위의 네 가지가 함께 갔다. 이어서 태평양전쟁 지지와 총동원 지원이 더해졌다. 신사참배란 천황숭배 + 신민 서사 암송 일장기 경례 + 신사 참배 + 전쟁 지원 + 신구약의 선별적 수용+ 일부 찬송가 삭제를 뜻했고, 나아가 신사 침례의식까지 하는 자도 생겼다. 만일 신사참배를 신사에 가서 절하는 것만 의미했다면, 오늘 우리가 비판하는 강도는 낮아졌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만일 내가 1938년 6월 교회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일본 교회와 대만 교회는 이미 신사참배가 국민 의식이요 종교 의식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조선 안에서도 천주교와 다수 개신교(감리회, 조합교회, 다수 장로회 노회)는 신사참배를 국민의 의무로 간주하고, 요배와 참배에 참석했다. 일본에서는 황성 요배를 안 하면 불경이나, 조선에서는 반역죄로 처리되었다. 함경도의 여러 선교사는 신사참배가 단순한 국민의례이니 참여해도 좋다고 했다.
자,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번역에 문제가 있어 일부만 수정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가는 자가 대부분이지만, 역류하는 살아 있는 자들이 있다. 역사는 그들이 만든다. 미래는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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