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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통합 합동 분열(1959)

1959 예장 합동 통합의 분열과 관련 문서들 1

1958-59년 한국 장로교회의 통합과 합동의 분열은 다음과 같은 주요 문서와 함께 진행되고 정리되었다.  합동은 WCC의 신신학과 용공성을 주장했다. 통합측은 박형룡의 재정 부정 지출을 문제 삼았다. 제 44회 대전총회 총대 선정 문제도 한 요인이었다. 

A. 1958, 예장 43회 총회 에큐메니칼운동반대 WCC 탈퇴 건의서 

WCC를 지도하는 간부 및 신학자들의 거의 전부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치 않습니다. 그 실정은 1954년 에반스톤에서 모인 WCC의 신앙적 기초에 '성경에 기초하여' 신앙을 고백하는 교파의 친선을 도모한다는 조문을 삽입할 것을 헌의하였으나 완전히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재림을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으며 동정녀 탄생과 그의 육신적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B.  1959년 2월 3일 남장로회 선교회 중립 발표 

     전주에서 열린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 회의는 다음과 같은 5개 항을 발표하면서 중립을 선언했다.

우리 남장로회 한국선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의 어떠한 집단의 분파적 선동도 찬성하지 않으며, 또 이에 가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C. 1959년 4월 9일 미국 북장로회 한국선교회 베어드 선교사에게 보낸 한경직의 메모

이에 한경직은 북장로회 한국선교회를 대표하던 실행위원장 베어드(Richard H. Baird) 선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친필 친전 메모를 보내어, 에큐메니칼운동 노선에 있는 통합측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곧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거짓 비난에 대해 WCC는 용공이 아니며 에큐메니칼운동 지도자들은 반드시 신신학자들이 아님을 밝히는 강력한 선언서를 발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메모는 당시 한국 교회 정치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선교회와 교회의 역학 관계를 알 수 있다. 물론 한경직의 뛰어난 영어 실력도 한 변수였다. 

D. 1959년 4월 1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임원과 주요 교회 목사 에큐메니칼 지지 입장 발표

1. 우리는 칼빈주의 신학에 입각한 우리 교회의 전통적인 신조와 정치를 엄수하며 복음적 신앙과 성별의 생활을 고수하고 교회 화평을 이룩한다. 2. 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2회 총회 결의대로 에큐메니칼운동은 교파간의 친선과 사업에 한하고 단일 교회 운동은 하지 않는다. NAE운동은 개인적 또는 단체적 신앙운동과 전도사업에 힘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에큐메니칼이나 NAE 운동은 교회 정치에 대하여 직접으로 간요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3.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상관할 수 없다(고후 6:14-16)는 말씀에 입각하여 우리는 여하한 용공 정책이나 친공 행위나 세속주의는 단호히 배격한다. 4. 우리는 성서적인 에큐메니칼운동은 인정하나 교회의 연합기구인 WCC나 기타 기관이 우리 총회의 순수한 신앙과 행위의  지향하는 바에 저해할 때는 이에 대하여 관계를 끊을 것을 주장한다. (총회장 노진현, 총무 김상권, 증경총회장 이인식, 이대영, 김필순, 한경직, 명신홍, 용산교회목사 유호준, 청암교회목사 이환수, 신문내교회목사 강신명, 남대문교회목사 배명준, 평안교회목사 김윤찬, 종교교육부총무 안광국, 염광교회목사 박찬목, 목사 김성준, 기독공보사 채기은) 

E. 4월 17일 북장 한국선교회 실행부 성명서 

한국에서 활동하던 남북 장로교회 한국 선교회의 선교사들이 어느 편에 서는가가  중요했다. 북장로회 한국선교회는 어느 쪽 편을 들기보다는 한국교회의 대립에 대해 분열할 만한 신학적 차이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 애썼다. 한경직의 메모가 있은 후 4월 17일 북장 한국선교회 실행부는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3. 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 현재 있는 선전과 대립을 가져올 만한 신학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F. 1959년 8월 7일 호남 지역 10개 노회, 에큐메니칼운동 탈퇴 선언

1. 에큐메니칼운동은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학에 주로 영향을 받고 있다. 2. 에큐메니칼운동과 WCC의 최종 목적은 하나의 교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3. WCC 운동에서 친공산주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4. 에큐메니칼운동은 한국교회에 또 한 번의 분열을 조장한다.

G. 1959년 9월 29일 제 44회 연동 총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제 44회 총회는 파란곡절이 심한 가운데 모든 회무를 마치고 폐회하였다. 총회의 복잡한 것은 에큐메니칼 대 NAE의 문제가 아니다. 박 교장의 3천만환 부정지출을 은폐하기 위하여 이런 명목을 걸고 나온 것뿐이다. 

H. 1960, 한경직, <宇宙時代와 信仰生活>

에큐메니칼운동 하면 간단히 말해서 두 가지 사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온 세계까지 가서 예수님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자. 또 하나는 온 세계교도들이 어떻든 연합해서 하나가 되자.  그것뿐입니다. 그러면 에큐메니칼이라고 하는 운동은 무슨 신신학(新神學)운동도 아니고 용공(容共)도 아니고 다른 것도 없습니다. 

I. 1965, H. A. Rhodes and A. Campbell,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CUSA,1934-1959.

1959년 9월 28일. 주로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에큐메니칼운동 문제로 한국장로교총회가 분열되어, 그 결과 장로교회가 세 번째 가장 큰 분열을 맞고 말았다.

이 외에도 많은 문서가 있다. 이러한 문서들을 보면 한국인들이 내세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학의 차이,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볼 때 한국교회 안에는 분열을 정당화할 만한 신학적 차이가 없었다. 

아, 통재라. 2019년이면 분열 60주년이다. 조상의 죄로 한국장로교회는 현재 100개가 넘는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다. 분열로 망한 교회, 역사 앞에 패배한 과거를 놓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이야기하는 게 사치다. 1957-59년 교회 '연합' 운동인 WCC가 한국에서는 교회 '분열'을 가져왔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이 교회에 '개혁'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한국 현실을 무시하고 기념하고 잔치만 한 결과 '개악'을 가져올 것인가?

ⓒ옥성득, 2017.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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