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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40s

일제말 장로교회 전투기 헌납

1. 이것은 한 대가 아니고 두 대였다.

2. 감리교회도 헌납했다.

3. 불교, 천주교도 헌납했다.

4. 도시별로, 단체별로, 사업체별, 종친회별, 심지어 화류조합도 헌납했다. 1대 제작비는 1942년에는 10만원, 1945년에는 8만원이었다. (지금 전투기가 아님, 기관단총이 약 8천원 하던 시절.) 국방헌금 8-10만원을 하면 비행기 한 대 헌납이 가능했다. 1944년 5월 26일자 <매일신보>를 보면 황해도 부인회에 300대가 할당되어 헌금 모금을 하고 있다. 1945년에는 북경에 있는 한국인들이 모금하여 "愛國機 十臺 獻納"했다.(매일신보, 1945년 3월 24일자)

5. 한국에서 애국기(전투기)는 1932년부터 헌납하지만, 중일전쟁이 터진 1937년부터 본격적으로 헌납하기 시작했는데, 1945년까지 육군과 해군에 헌납한 수는 2,000대가 넘었을 것이다. 아래 사진에도 보면 '조선장로호'(보국 745호) 외에도 20대가 헌납되었다고 쓰고 있다.

6. 곧 자진 헌금이 아니라 군과 정부에서 내려온 할당제였다. 장로교회는 감리교회보다 교세가 3배는 되었기에 그만큼 국방헌금을 많이 했다. 두 교회가 헌납한 비행기는 전체의 0.2% 정도에 해당한다. 잘 했다는 게 아니라, 단체별로 헌납하던 것의 일부였다. 이것을 '악의 진부성'으로 따지면 따질 수 있지만, 전쟁 중에 국방 헌금하던 것의 일부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의 총동원 체제에 대항하기 어려웠다.

7.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회록에 따르면, 장로교회는 1937년부터 3년간 국방헌금 158만원, 휼병금 17만 2천원을 걷었고, 무운장구기도회 8,953회, 시국강연회 1,355회, 전승축하회 604회, 위문 181회를 치렀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이 붙은 애국기(愛國機·전투기) 한 대와 기관총 7정 구입비 15만 317원50전을 바치고, 미군과 싸워 이겨달라는 신도 의식을 거행했다. 1942년 열린 제42회 총회 보고를 보면, 교회종 1,540개, 유기 2,165점을 모아 12만여 원을 마련해 일제에 바쳤다. 식민지 하, 전쟁 하의 교회란 이런 것이다.

8. 언론에서 기독교 비판하면서 이 사실을 콕 집어서 교회가 적극 친일 부역한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문제이다. 위에 1-6번을 고려해서 불교나 천주교나 다른 종교의 경우도 함께 말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잘 했다는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말해야 한다는 말이다.

9. 그래도 타락한 교회는 너무 나갔다. 신사참배 이후 무너지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1944년이 되면 주일 예배 한 번만 드리다가 1945년에는 거의 모든 교회당이 폐쇄되었다. 망해도 쫄딱 망했다. 1912년 총회 조직 후 30년 만에 완전 종쳤다. 해방이 도둑처럼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10. 지금도 교회 타락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해방 후에 친일 부일 목사들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 개판을 쳐도 용서 받을 것으로 오판하면 안 된다. 회복에는 시간이 걸려도, 타락은 순간이니 다른 교단도 마찬가지다. 도둑처럼 주님이 오시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주 재림 전에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10월의 마지막 밤이 오기 전에 돌아서야 한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