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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마페트 (마포삼열)

한 선교사의 일생: 마포삼열

20세기 가장 위대한 선교사의 한 사람이었던 마페트(Samuel Austin Moffett 馬布三悅, 1864-1939) 목사

그는 스물 여섯 생일이던 1890년 1월 15일 한국에 파송되어 70세인 1934년 한국 기독교선교 50주년, 본인 한국선교 45주년 때 은퇴했다. 북한 선교를 개척하기 위해 9년이나 결혼을 미루며 작은 골방에서 잤던 그였다. 평양을 세계 최고 최대 선교지부로 만드는 일에 청년, 장년, 노년을 헌신했다. 한국을 깊이 사랑했기에 은퇴 후에도 딱히 갈 데가 없어 그대로 평양에 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1936년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잠시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 길이 되었다. [신사참배 반대 선교사를 미행 감시하던] 일본 형사에 쫓기는 환영에 시달리는 정신병에 걸린 아내를 돌보다 1939년 10월 24일 캘리포니아 몬로비아에서 쓸쓸이 사망했다. 미국에 온 후 지낼 곳이 없어 지인이 준 작은 창고같은 방에서 지냈던 마포 목사였다. 그가 얼마나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인처럼 살았는지,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직원에게 한국말을 했다고 한다.

여기 그가 내한할 때 사진과 은퇴할 때 사진을 같이 올린다. 40여 년 한국과 한국장로교회와 장로회신학교(장신+총신+한신의 모체)와 숭실대를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을 기려 자료집을 만드는 중이다. 1-4권은 2017년 새물결플러스에서 출판했다. 

25세(1889년) 내한 직전의 모습과 45년 후 은퇴할 때인 70세(1934년)의 마페트 

한 선교사[+ 부인]가 일생을 걸고 선교하며 피땀으로 쓴 친필 자료들을 보며 그 인격에 매료된 며느리인 마애린(Eileen Flower Moffett) 여사는 20년 동안 타이핑을 해서, 책 12권 분량에 달하는 파일을 나에게 주며 책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금 부족과 시간 부족으로 4권에서 중단되었다. 출판사도 4권을 낸 후에 적자를 많이 보았다.

한국장로교회 목회자와 교회들은 칼빈은 알지만 한국에 온 언더우드나 마페트를 기념하는 방법에 서툴다. 건물이나 동상보다 중요한 것이 그들의 사상이요, 그들이 남긴 글이다. 500년 전 루터를 위해서는 만 리 길도 마다 않고 수 백만 달러를 쓰며 독일을 방문하는 교인들과 목회자들과 총회 임원들! 한두 해 루터 책 수 십 권을 출판하는 한국의 기독교 출판사들! 에드워즈, 카이퍼, 몰트만, 켈러의 책에는 줄을 치며 읽는 그들, 그들이 어찌 100년 전 한국 교회를 세운 마 목사를 위해서는 이리도 박한가? 부끄럽다. 마포삼열의 후예들이여! 총신, 장신, 숭실의 교문을 나선 이들이여! 장로교회 문턱을 드나드는 이들이여!

제5계명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조상을 공경하면 이 땅에서 생명이 길고 땅을 유업으로 받지만, 조상과 역사를 잊은 교회는 3-4대 이상을 가기 어렵다.

가신 지 81년, 10월의 마지막 주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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