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승만 (18)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승만 미화 지나치면 독이다 [지나친 역사 미화는 독이다]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이 호 목사)가 며칠 전 뉴욕 프라미스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이승만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면서 그를 “세기적인 위대한 전도자”로 칭송했다. “1899년 1월, 추운 겨울날 조선의 중죄수만 가두는 한성 감옥에서 이승만은 회심한다. 조선의 양반가운데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당시 조선 팔도에 예수 믿는 사람은 40명, 남자 가운데는 백정, 여자 가운데는 기생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대접을 받는 양반 가운데 단 한명 이승만은 회심하고 가슴에 민족복음화의 꿈을 가진다. 예수 믿은 그날부터 이승만은 조선에 1백만 명이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1) 1899년 1월 당시 조선 팔도에 개신교 신자가 40명? (2) 그것도 백정과 .. 1925 이승만 박사 李承晩博士는 渾身都是熱 金一善이러케 鐘路를 거처서 청년회관을 오면 李박사 생각이 別로 간졀해짐니다. 정말로 公번 띄고 私心업고, 혼신이 도모지 열정 떵어리인 李박사! 그야말로 愛國愛民의 열렬한 志士요 烈士임니다.일즉이 海州에서 생장하야, 자기 아버지를 쪼차 京城에 드러오기는 아마 16,7세이엿슬 듯함니다. 본래 漢文에 능한 그는 培材學堂에 드러가 영어를 중심으로 신학문을 학습하다가, 丁酉年頃에 徐載弼박사가 독립신문을 發刋할때에는 그 社에 논설기자로 드러가서, 독립이상의 고취에 盡力하얏슴니다. 독립협회라 하며, 만민공동회라 하면 더 말할 것 업시 近世의 조선에서 처음 닐어난 유일한 민간정당으로서, 당시에 宮中府中을 蕭淸하고, 민간사회를 혁신하기에 얼마마한 활약을 하엿는가하는 것은 이제 군더덕이로 말할 것 ..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