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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파파워> "한국개신교 140주년의 의미" 인터뷰 https://www.newspower.co.kr/61517?fbclid=IwY2xjawKd_2pleHRuA2FlbQIxMQBicmlkETF2SFZRVVR6NEJ1WkdKU3J1AR5-Xs9OZYhXDOcoGv6tm_lBp_YprVv-Z9EavpZZnuJI2fFrrkY3yg4mrDbiBQ_aem_bG8OFVl_WAsGdstJ5bsNFA ≪newspower≫ [파워 인터뷰] “한국 교회, 쇠퇴와 성숙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주최가되어한국기독교선교140주년을기념하는행사가진행되고있다.그런가운데한국기독교초기역사중잘못전해지고있는부분www.newspower.co.kr
<한국교회 첫 사건들> 방송 보도 CBS 노컷뉴스 https://www.nocutnews.co.kr/news/6343518?utm_source=naver&utm_medium=article&utm_campaign=20250521085425&fbclid=IwY2xjawKd_sRleHRuA2FlbQIxMQBicmlkETF2SFZRVVR6NEJ1WkdKU3J1AR4ZOa-l1rB1PuuFXnJUi1PWU70zcrQhaEEHWJRlsBNbA3E29pTg6x7xTCyQZQ_aem_HQGqQc4KHp-QCe0Co-X3ww 책 '한국교회 첫 사건들', 한국교회 최초의 사건들로 초기 교회사 살펴본다[앵커] 한국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 때 처음 내한한 선교사는 누구인지, 처음 세워진 교회는 어디인지, 종종 처음, 최초의 무엇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국 ..
책 <한국교회 첫 사건들> 신문 보도 서평http://www.cbooknews.com/?c=25&uid=15166&fbclid=IwY2xjawKeADlleHRuA2FlbQIxMQBicmlkETFsdGVqMUJUUFgyWnEyUlJIAR4v9PEyCyKecX3oD9OLSWpJpCJUaks4Bujluhn_xRWHxHXecZ1KdfVM0G42Ng_aem_kosG-kVz0dtR-6SI-imLaA 크리스찬북뉴스 - 서평- 한국 교회 첫 사건들크리스찬북뉴스 - 서평- 한국 교회 첫 사건들www.cbooknews.com https://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447345&fbclid=IwY2xjawKd_ERleHRuA2FlbQIxMQBicmlkETF2SFZRVVR6NEJ1WkdKU3J1AR4r..
1904 정익로 장로 1909년 평양 장대현교회 새벽기도회를 시작한 세 사람은 길선주, 김종섭, 정익로여기 그들의 사진과 정익로 장로의 장로 장립일에 대한 자료가 있어 올린다.주공삼과 정익로는 1904년 5월 15일 장로 장립되어, 당회원은 5명이 되었다. 곧 김종섭, 이영언, 길선주에 이어 주공삼, 정익로가 장대현교회 장로가 되었다. 정 장로는 1908년 일본 동경한인교회에 파송되어 김경식 등과 함께 동경 한인YMCA를 설립한다. 1908년에 발간된 정익노(1863-1928) 장로의 은 첫 근대 옥편으로, 1910년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는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기독교 부흥에 앞장섰고, 1911년 신민회 사건과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한편, 그의 손녀 정보옥은 일본에서 의사가 되었는데..
1933. 2 평양 겨울 부인사경회 열흘 간 1,500명 이상 참여, 뒤의 양옥들은 선교사 사택들, 멀리 공립 평양보통남학교(초등학교 6년제) 건물 일부가 보인다.평양선교지부 연례보고서, 1932-33, p. 8
1894년 4월 4일자 레널즈 일기 1894년 3월 말에 전주를 처음 방문한 Reynolds 목사와 Drew 의사는 조사 정해원이 매입한 은송리의 주택에 정 씨가 최소한 이듬해 봄까지 머물러 주기를 원했다. 그러면 Tate 목사가 와서 그 집에 거주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정 씨 아내와 주변인들이 정해원의 전주 거주를 반대했다, 아마도 동학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레널즈의 일기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기록한다. 내가 쓴 (2025) 36장을 참고하기 바란다.일부 연구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레널즈의 일기 번역문을 보고, 그 오류를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이곳에 등장하는 박 서방이 바로 천주교인으로 서울에서 남장 선교사들의 어학교사였던 청년이었다. , 362-363쪽 참조. 천주교..
1908 기독교로 부강하게 될까? ”시사평론: 서호문답,“ 대한매일신보>, 1908.3.12.▲ 객 왈. 덕육을 힘쓸진대 기독교를 믿는 것이 가합니까? ▲ 주인 왈. 그러하다. 예수 기독은 곧 하나님 아들이요 만국 제왕의 왕이신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강생하셨다가 천하 만국 만인의 죄악을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곧 우리 한국 이천 만 인민의 죄도 대신하여 돌아가신지라. 오늘날 우리 한국이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의무를 준행치 아니하여 죄악이 관영한즉, 허다한 죄악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으나, 개인이 나라를 망한 죄와 온 나라가 권리를 잃은 죄가 충만하여, 생전 지옥의 참혹한 것을 보니, 어찌 사람이 어찌 차마 이것을 보리오. 원컨대 동포들은 다 구주를 독실히 믿어 한 몸의 죄와 한 나라의 죄를 속량하고 주의 은혜를 감복하여..
오문환, 조선기독교사의 일분수령인 평양양란, 1926 오문환, 朝鮮基督敎史의 一分水嶺인 平壤洋亂>, 평양:  광명서관, 30 p, 12.4 x 18.2 cm, 1926.8.31. 초판오문환(南坡 吳文煥, 1903~1962)이 저술한 첫 저서로, 토마스 목사 순교 60주년을 기념하여 1926년에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