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일제말에 발행된 잡지 <春秋> 4권 8호에 실린 징병제 관련 윤치호(伊東치호)와 김활란(天城활란)의 글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귀중본실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윤치호는 조선인 청년 지원병 1기가 일본의 군인으로 제대로 역할하면 이후 앞다투어 지원할 것이며, 군인으로 전사하면 신사에 신으로 모셔지기 때문에 영광이라고 하였다. 조선청년이 일본 정신으로 무장하면 일본인과 동등한 군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국의 神兵으로 헌신하여 일본 신사에 제향되는 神이 되라고 격려했다.
김활란은 짧은 글에서 제국군인의 되는 첫 선발대가 책임감 있게 솔선수범할 것을 권면하면서 그들의 출발을 축복했다.
두 글 모두 내선일체의 이념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이 평등하게 되는 한 길이 징병제에 응하여 제국 군인이 되라고 강력히 권한다. 이는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의 논리인 "병역은 황민의 최고 특권"이라는 언어도단의 말과 같은 망언이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전쟁 총알밪이가 되는 게 어찌 제국의 평등한 시민이 되며, 어찌 신사에서 신으로 제사를 받는 것이 제국의 시민으로 생활하는 것인가? 그들이 지켜야 하는 제국은 일본인의 제국이요, 친일파의 제국이었지, 평범한 한국인 서민의 나라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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