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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1940s

윤치호와 김활란의 징병제 지지, 1943년 9월

다음은 일제말에 발행된 잡지 <春秋> 4권 8호에 실린 징병제 관련 윤치호(伊東치호)와 김활란(天城활란)의 글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귀중본실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 

<춘추> 4-8호, 1943년 9월호
차례: 징병제 지지의 글을 올린 윤치호와 김활란의 이름이 보인다, 1943년 9월

윤치호는 조선인 청년 지원병 1기가 일본의 군인으로 제대로 역할하면 이후 앞다투어 지원할 것이며, 군인으로 전사하면 신사에 신으로 모셔지기 때문에 영광이라고 하였다. 조선청년이 일본 정신으로 무장하면 일본인과 동등한 군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국의 神兵으로 헌신하여 일본 신사에 제향되는 神이 되라고 격려했다. 

김활란은 짧은 글에서 제국군인의 되는 첫 선발대가 책임감 있게 솔선수범할 것을 권면하면서 그들의 출발을 축복했다. 

두 글 모두 내선일체의 이념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이 평등하게 되는 한 길이 징병제에 응하여 제국 군인이 되라고 강력히 권한다. 이는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의 논리인 "병역은 황민의 최고 특권"이라는 언어도단의 말과 같은 망언이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전쟁 총알밪이가 되는 게 어찌 제국의 평등한 시민이 되며, 어찌 신사에서 신으로 제사를 받는 것이 제국의 시민으로 생활하는 것인가? 그들이 지켜야 하는 제국은 일본인의 제국이요, 친일파의 제국이었지, 평범한 한국인 서민의 나라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