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朝鮮金融組合聯合會가 발행한 <半島の光> 제70호(1943년 10월 1일)에 실린 박인덕과 고황경의 글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권면에서 자녀들을 잘 길러서 국가가 원할 때 희생이 되더라도 징병제에 따라 황군으로 바칠 것을 주장했다. 개인이나 집안의 보물을 넘어 국가에 필요한 군인을 기르는 게 어머니의 최고 의무라고 강변했다. 국가주의, 제국주의 자녀관이요 어머니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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