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옥 교수의 글 /일반 단상, 광고

萬折必東

만절필동의 의미 변화

2017. 12. 19. 옥성득


이번 주에 주중대사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이 논란이다.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한 파인 순자(荀子)의 유좌편(宥坐篇)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자공이 공자에게 "군자가 물을 보고 느껴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공자 왈 "만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니 의지가 있는 것과 같다."라고 답했다. 중국의 지형이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까닭에 반드시 물은 동쪽으로 흐른다는 의미이며,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된다는 의미이다. 우여곡절을 겪어도 진리를 위해 매진하는 강력한 의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점차 황제에 대한 충성의 표현으로 뜻이 변했다. 한국에서는 임란 때 명의 도움을 받아 왕실이 보전되자, 선조는 중국 황제에 대한 충성을 만절필동으로 표현했다. 이후 만절필동은 제후나 왕이 황제에 충성과 감사를 표현하는 문구가 되었다. 중화주의를 수용하는 저자세이다.

단어나 용어는 역사가 있다. 그 역사란 의미 변화의 역사이고, 의미 창출의 역사이다. 주중 대사가 그 말을 원래 의미인 사필귀정으로 썼다고 강변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말의 의미는 변하고, 역사와 문맥이 그 의미를 규정한다. 국내에서 그 말을 쓰면 사필귀정도 되고 왕에 대한 충성도 된다. 그러나 한국 정치가가 중국에 가서 그 말을 방명록에 쓰면 그것은 중국을 중화 대국으로 섬기겠다는 사대주의 충성 서약밖에 되지 않는다.


2019. 2. 14

https://news.joins.com/article/23368746

그렇다면 2019년 2월 12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펠로시 미하원의장에게 선물한 족자의 만절필동은 무슨 의미일까?

Dear Pelosi는 파격이지 바른 양식은 아니다. 을해춘 다음에 펠로시에게 준다는 말을 한문으로 썼다면 더 좋았다.

2월 12일이 을해 春도 아니다. 물론 입춘과 설날이 겹쳤지만, 아직 보름 기간이니 을해신년 정도가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국에 대한 충성을 표하는 뜻으로 변한 '만절필동'을 주면서 미국 민주당 정책에 반하는 한국 민주당 측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엇박자가 났다. 과연 우여곡절을 겪어도 대한민국은 미국에 충성하겠다는 뜻인가? 그게 순리인가? 외교엔 순리가 없고 국익만 있을 뿐이다. 외교에 必은 없고 折만 있을 뿐이다. 외교가에서 '만절필동'은 이제 그만 쓰면 좋을 듯하다. 남한 정부와 민주당이 북한을 너무 믿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