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상하이의 현순(특별대표위원)이 샌프란시스코 안창호(대한국민회 회장)에게 보낸 전보
안창호는 3월 9일 이를 받았고, <신한민보>, 1919년 3월 13일자 호외로 보도.
"상항 한인 안창호: 한인 300만 명 독립단은 예수교회 3,000과 천도교회 5,000과 각 대학교와 모든 학교들과 각 단체들이 일어나 조직한 자라. 독립단은 3월 1일 하오 1시에 서울, 평양과 그 밖의 각 도시에서 대한독립을 선언하고 대표자는 손병희, 이상재, 길선주 3씨를 파송하였소. 이승만 박사는 어디 있소. 회전하시오. 상해 특별대표원 현순"
전국에서 300만 명이 참가, 예수교회 3000개와 천도교회 5000개가 참여, 3월 1일 오후 1시에 시작.
'인물 > 이승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성임시정부와 이승만의 대한민국 국호 사용, 1919년 4-6월 (0) | 2019.02.27 |
---|---|
1919년 삼일운동 직후 이승만의 행동 (0) | 2019.02.23 |
1910 이승만의 <독립정신> (0) | 2019.02.02 |
이승만 미화 지나치면 독이다 (1) | 2019.02.01 |
1925 이승만 박사 (0) | 2019.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