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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3.1운동 (1919)

1919년 설립된 시카고한인감리교회에 1923년 김창준 목사 부임

시카고 한인 감리교회, 1919

1919년 8월에 설립된 시카고 지역 최초의 한인교회이다. 위와 같이 Korea Review(『한국평론』) 1919년 12월 호에 실린 사진에는 약 40명이 모여 있다.  1919년 당시 시카고 지역 한인들의 수가 대략 40∼50 명 정도로 거의 모든 한인들이 이 교회 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대 목사로 최 N. Y.(조사 요)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가 1923년 9월 시카고한인감리교회의 이름으로 다시 설립되었다.

설립에 앞장 선 인물들은 강영소, 김경, 김원용, 박장순, 염광섭, 차의석 등이다. 
1923년 이들은 3·1운동 당시 33인 민족대표의 한 사람인 김창준(金昌俊) 목사를 초빙해 예배를 드렸다. 1927년 5월 8일 레이팍 애비뉴에 교회 건물을 설비하고 미국 감리교단에 정식 소속이 되었다.
1928년 2월 5일 오크데일(Oakdale) 애비뉴의 826W에 있는 건물을 임대해 사용했고, 1949년 그 건물을 구입하였다. 1층에는 사교실과 관리인이 쓰는 침실과 부엌이 있었고 2층 중앙에는 예배실, 그 좌우에는 2∼3개의 침실을 갖추었다. 좌우의 침실은 주로 한인유학생들이 기거하였다.
해방 이전 교회는 시카고지역 한인들의 예배당으로서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한 집회 장소로 활용되었다. 한 때 버나드가(Bernard Street) 4850N으로 이전했다가 현재는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의 이름으로 휠링(Wheeling)에 있는 힌츠가(Hintz Road) 655E에서 정착해 활동 중에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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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金昌俊, 1890-1959)

평남 강서 출생. 1914년 평양 숭실대학을 거쳐 1917년 감리교 협성신학교 졸업(5회). 1919년 서울 중앙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3·1운동 민족대표로 참여하고 2년 9개월 투옥. 1922년 미감리회 조선연회에서 목사 안수. 1926년 미국 게렛신학교 및 노스웨스턴대학 졸업. 1933년 감리교신학교 실천신학 교수. 1941년 신학교 폐교 이후 은둔생활을 하다 해방 후 1947년 기독교민주동맹 창당. 1948년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참석차 방북했다가 평양에 남아 공산주의 정권수립에 참여, 북조선 최고인민위원회 부의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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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한인사는 강영승 박사의 가족들이 시카고에 머물면서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의 맏아들 제임스 강씨는 공장 감독으로 일했고, 셋째딸 에스터 강은 치과의사인 남편(Fred Ohr)과 함께 시카고 한인 사회의 기원을 이루었다. 1930년 그녀가 남편과 함께 시카고에 정착했을 때 한인들은 주로 하와이 농장 이민을 거쳤거나 유학생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김경, 박필, 정태은, 오한수, 김홍기, 조종진, 황휘 등이 사업을 하고 있었고 유학생으로는 염광섭, 황창하, 현정염, 김여택 등 10여 명이 있었다. 1918년 10월 8일 시카고 한인 학생회가 조직되었고, 1920년 4월 6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학생총회 결성대회에 시카고에서는 강영승, 양영진, 현승염, 현정염 4인이 발기인으로 참석했다. 

1921년 4월 30일 뉴욕에서 북미 유학생 총회가 정식 결성되었고 학생회 총회 본부를 1923년 시카고로 이전하면서 회장에 염광섭, 부회장에 황창하가 책임을 맡았다. 이 시기가 현재의 시카고 한인 제일연합감리교회의 설립 시기 전후로 학생회 리더들이 교회 창설 발기인으로 관여했다. 에스터 오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한인제일연합감리교는 1919년 미국 감리교단 국내 선교부의 후원으로 첫 기도 모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923년 9월에 정식으로 창립한 시카고 한인 제일연합감리교회는 초대 목사로 김창준 목사가 1924년부터 1926년까지 목회자로 있었고, 1936년 6대 목사로 이은택 목사가 미감리교 본부로부터 보직을 받고 부임하여 1964년까지 28년 간 훌륭한 목회 활동을 하여 한인 사회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으며 시카고 한인 사회 발전에 중추적인 활동을 해왔다. 

시카고의 이민사도 따지고 보면 교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2년 시카고에 한인 감리교회가 예배당을 마련했으며 이 곳을 중심으로 한인 사회가 발전해 나갔다. 시카고에 처음으로 한인 교회가 생긴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시카고를 거쳐 간 인물들은 해방 후 건국 초기 대한민국의 요직에서 활동한 쟁쟁한 인사들이 많은데 우리가 알 만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조병욱(정치가), 황선수(목사,국회부의장), 김태선(서울시장), 김활란(이대총장), 고황경(서울여대 설립자), 김제식(김규식박사 동생), 오천석(문교장관), 최규남(문교장관), 윤일선(서울대총장), 노재명(충북대총장), 전규홍(일본중앙대 교수), 이유선(성악가), 현제명(음악가), 홍난파(작곡가), 김훈(상공장관), 류형기(감리교 신학교장), 한승인(서독 공사)등이 있으며, 미주에서 활동한 김경(1912년 시카고에 정착), 강영소(국민회 중앙 총회장), 나재원(교회이사장, 사업가), 염광섭(북미 유학생 총회장), 황창하(한인학생회 회보 주필) 등이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1930년대 시카고 지역의 한인수는 모두 1백 명 미만으로 미 정부 인구 조사국이 발표했다. 창립 76주년을 맞는 감리교회는 지금도 한인타운 로렌스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면 현재 시카고에는 300여개의 교회가 산재해 있고, 그 중 30여개의 교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카고한인회, 시카고 한인 이민 역사,  http://kor.koreachicago.org/page_UvCq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