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1900년 God에 해당하는 한국어 번역을 놓고 용어 논쟁이 진행 중일 때
<독립신문>은 하ᄂᆞ님을 지지했다. 독립신문의 지지는 한국인 일반이 하ᄂᆞ님을 선호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선교사들 대부분이 하ᄂᆞ님을 지지하도록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당시 언더우드는 천주교와 성공회와 함께 "텬쥬"(천주)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평양의 마페트는 물론, 서울의 서재필, 윤치호 등이 하ᄂᆞ님을 지지했다.
하나님과 하느님으로 분리되는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해방 이전의 기본 표기는 하ᄂᆞ님이었다.
1897년 1월 26일자 <독립신문> 2-10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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