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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예화, 유머

한자로 본 창세기 이해: 근거 없는 통속적 해석

한국개신교에서 창세기를 통속적으로 이해하는 두 축이 있다. 첫째가 창조과학이고, 둘째가 그와 함께 가는 한자로 푸는 창세기 이해이다. 한 마디로 둘 다 근거가 약하다. 과학적 해석이 아니다. 오늘은 후자만 보자.

이 분야에 여러 책이 있으나 가장 최근에 나와서 잘 팔리는 책은 박필립, <신비한 성경 속 한자의 비밀>, 가나북스, 2013년인 듯하다.  책의 차례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추천사도 어마무시하다.    

1. 욕단의 후손이 만든 한자 … 19
1) 동이족은 욕단의 후손 _21
2) 아기 예수께 경배한 동방박사는 동이족 _33
3) 중국 한족은 ‘함’의 후손 _41
4) 동이족이 세운 상나라 _43
5) 동이족이 만든 갑골문자 _50
6) 욕단의 상나라, 함의 주나라에 망하다 _58

2. 신(神)이 되고자 한 진시황제 … 65
1) 분열과 통합이 반복되는 중원 땅 _67
2) 신이 되고자 한 시황제 _69
3) 천자는 하나님의 아들 _74

3. 동이족이 한자(韓字)로 기록한 하나님의 역사 … 85
1) 상나라의 후손이 세운 조선 _87
2) 조선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 _90
3) 한자는 한자(韓字) _92

4. <설문해자>는 허신과 단옥재의 열정 … 97
1) 허신은 창세기를 알고 있었다. _99
2) 허신은 동이족 _101
3) <설문해자>를 위해 태어난 단옥재 _104
4) 천지창조의 비밀을 푼 <설문해자> _106
5) 허신은 왜 <설문해자>를 저술했나. _109
6) 동이족 방식의 음표기법을 사용한 <설문해자> _113
7) 후한은 어떤 나라인가 _117
8)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채륜

5. 창세기로 풀어낸 <설문해자> … 123
1) 천지를 창조하셨다. _127
2) 사람을 만드시고 후회하셨다 _146
3) 홍수로 쓸어버리셨다. _166
4) 순종하는 자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_185
5) 여호와의 사랑을 또다시 배신한 죄인들 _204
6) 서로 사랑하여 화목 하라 _222

6.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한자의 기독적 풀이 … 243

잘 알려진 몇 개의 한자 풀이를 보자. 이런 해석은 중국 고전과 성경을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즉 인류가 하나이므로 성경의 창세기 1-11장의 원 역사를 다른 나라도 공유하는 원역사로 간주한 결과이다.  

한자의 여섯 가지 구성원리인 육서(六書) 중에서 형성(形聲), 곧 뜻 글자와 소리 글자를 합해서 한 글자를 만드는 원리가 있는데, 창세기 한자 풀이는 대개 이런 글자에서 소리 부분까지 뜻으로 해석하고, 소리 부분의 글자도 파자하는 방법을 채용한다.

: 林(발음) + 示(뜻)이지만, 두 개의 나무를 보여줌으로써 금지의 뜻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木)을 보여주고 금했으나, 아담과 이브가 불순종하여 그 나무 열매를 먹자, 에덴 동산에서 동쪽으로 추방하고 생명의 나무(木)가 있는 동산은 불칼로 지키며 접근을 금했다. 즉 두 개의 나무를 금지했다는 사실에서 금자가 만들어졌다. 참 그럴 듯한 해석이다.   

그러나 고대 한자의 어원에 대한 권위서인 CE 100년 경 후한 때 허신(許愼)이 편찬한《說文解字》를 보면 禁은 "吉凶之忌也從示林聲."이라 했다. 곧 林은 발음을 나타내고, 뜻은 示에 있는데, 길흉이 다 보는 데서 나기 때문에 아무 것이나 보지 못하게 금기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林이란 글자도 반드시 나무 두 개가 아니고 여러 개를 뜻한다. 森이 나무 세 개로 나무가 빽빽한 것을 상징한 것이지 실제 세 개가 아닌 것과 같다. 

= 舟(뜻) + 연八口(발음)인데, 배에 8명의 사람이 탔다 = 노아의 방주가 처음 만든 큰 배인 船으로 해석한다. 사실 船 = 舟(뜻) + 연(발음: 沿, 鉛 등의 오른쪽)이 합해 진 글자로, 연은 八+口가 아니라 한 글자이다. 연을 파자한다면 갑골문에서 윗 부분은 八자와 유사하므로 굳이 나누자면 八 + 口로 볼 수는 있지만, 八 대신 入에 가깝게 쓴다.     

  = 羊 (뜻) + 我 (발음)로 구성된 글자. 두 개의 의미가 결합되었다고 본 것은 원래 의미에서 보면 틀린 이해이지만, 美를 큰 양이 아름답다로 해석한 데서 힌트를 얻어, "내가 양 아래 들어가니 의롭다"라고 새롭게 해석했다. 원의는 아니나 새 해석을 가능하게 한 상상력이 신학적 작업이다. 원의와 다른 새 의미를 찾아 내는 파자 전통을 따른 새 해석이다.

문리본 창세기 1장

한국 교회가 널리 사용하는 그 한자 어원 비밀 책은 득보다 해가 큰 책이다. 한국에서는 창조과학회와 일부 목회자들이 한자 안에 무슨 대단한 秘義가 숨어 있다고 믿는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1. 설문해자를 이용하지만 설문해자에는 그런 해석이 없다.

2. 설문해자보다 더 원래 글자를 보여주는 갑골문자 연구 결과 창세기를 지지하는 일신론이나 창조 기사에 대한 증거는 없다. 아직까지 갑골문자를 통해 중국의 원시 일신교를 지지해 주는 증거는 없다.

3. 중국 교회에서 이런 한자 파자풀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파자를 통한 glyphomancy(글자에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는 파자해석, 파자풀이, 한자어로는 釋義測字)는 도교나 유교에서 예언 해석, 특히 왕조 교체와 관련해서 사용해온 해석의 한 방법이다.

아무 한자나 창세기와 연결시킨 해석은 예수회의 색은주의자 (figurists), 특히 Joachim Bouvet(1656-1730) 의 해석을 이어 받은 19세기 후반 개신교 선교사 일부가 발전시킨 비주류 해석이다. 부베는 요(堯) 임금을 노아와 동일 인물로 보고 선(船) 자를 위와 같이 파자했으며, 팔괘를 만든 복희(伏羲)를 에녹(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 =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과 동일 인물로 간주하고 주역(周易)의 음양론을 당시 라이프니츠가 발전시키던 이진법보다 수 천 년 앞선 우주의 원리로 보았다.

19세기 대만의 경우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오병이어() 기적을 五는 五行, 二는 陰陽으로 보고 음양오행의 조화로 만물을 만드시는 주께서 수 천 명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게 없다고 보는 해석이 있었다. 이 경우 히브리어 글자가 가진 수의 가치를 바탕으로 발전된 게마트리아(수비학)를 한자에 적용시킨 예이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의 수를 합하면 999인데 이는신성을 나타내는 수 37 x 27가 되고, "하나님 하늘 땅"은 888이라 37 x 24가 된다는 식이다. 수비학으로 666을 풀면 "네로 시저"가 된다. 히브리어는 글자 자체에 숫적 가치가 있으나, 한자에서는 숫자 자체가 상징하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도 중국과 도교 참위설과 풍수설의 영향을 받아 왕조 교체기나 혁명기에 파자해석이 유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의 어려운 문구를 파자해석으로 푸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다른 곳에서 토론했으므로 생략한다.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207

아무튼 한자 자체 안에 창세기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전제가 고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증명된 게 아니므로, 순전히 추측에 불과한 창세기 한자 풀이는 득보다는 해가 많다. 그럴듯하게 끼워맞추는 해석 대신 말씀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 한국 교회가 말씀의 뜻을 몰라서 신앙이 타락하는 게 아니다. 숨은 뜻까지도 필요없다. 드러난 뜻만 이해하고 실천하면 개인이 변하고 교회가 바뀌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소수의 신비주의자들이 아는 비밀, 비의, 그런 것 없어도 교회는 바로 설 수 있다.   

"한자로 본 창세기" 같은 책은 종이와 잉크와 시간이 아깝다. 굳이 읽으려면 "한자로 본 창세기"를 하기 전에 "한문으로 읽는 창세기"를 하라. 또한 그냥 한글로 읽어도 그 뜻이 오묘하니, "한글로 본 창세기"를 하라. 한글로 본 창세기를 해도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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